우주 7

새벽 빗줄기

새벽 빗소리가 열린 창으로 들어와 방 안 가득한 열기를 밀어낸다. 뜨거운 열기가 서서히 그 기세를 누그러뜨면서 차가운 습기로 채워진다. 이 습기만 견딜 수 있다면, 제법 청량한 잠을 잘 수 있을 게다, 가족들은. 가끔 이 세계가 존재하고 내가 생각할 수 있고 사랑을 느끼거나 행복을 느낄 때, 신비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그건 호르몬의 영향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만 그 호르몬 모두를 지금 알지 못할 뿐이라고 하면서. 그러나 이 신비 앞에서 파스칼은 끝없는 두려움을 느꼈고 20세기 초반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우리 존재의 목적이나 이 세상의 기원에 대해 아무런 이유도, 근거도 없다며 절망했다. 그리고 21세기 초반, 백 년 전 그 절망을 현대의 이론 물리학자들이 이어받는다. 책을 읽을수록, 내 지..

숲 속에서의 책 읽기

제목이야 저렇게 달았지만, 여유로운 풍경이라기 보다는 도망쳐 나온 것이다. 소년원 출신 시인 장정일이 그의 첫 시집에서 '도망 중'이라는 글귀를 사용했을 때, 절반만 공감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제 그도 이제 환갑이 되었고 나도 쉰이 되어간다. 돌이켜보니, 늙었다는 기분에 잠긴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젊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종종, 자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저 침묵의 우주가 가진 절망스러운 무한함에 대해서도. 몇 명의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 그 사람들을 내보내고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데, 엄청나게 힘에 부친다. 계속 구인공고를 올리지만, 대졸 신입도 지원하지 않는다. 회사는 매년 성장해 이제 직원 수만 150명 가까이 되는 디지털 에이전시가 되었지만,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

힉스 입자와 가짜 진공

우연히 가짜 진공(false Vacuum)이라는 개념과 함께 진공 붕괴(Vacuum Decay)를 듣게 되었다. 물체는 높은 에너지에서 낮은 에너지로 갈 때 보다 안정적인 상태로 가게 된다. 우리가 진공(Vacuum)이라고 할 때, 그건 어쩌면 우주에서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짜라면? 그래서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갈 수 있다면? 이 때 진공 붕괴가 생기게 되고 이 우주는 그냥 소멸하게 된다는 것이 진공 붕괴다. 그리고 이것에 깊이 관여하는 입자가 힉스 입자(Higgs Particle)이다. 아래는 이와 관련된 동영상들을 모아둔 것이다. 시간날 때 천천히 보기 위해서.

블랙홀

'어쩌면 내일이 지구의 종말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저 끝없는 우주에 어떤 생명체가 있을 지 모르고, 늘 세상은, 이 우주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곳이니, 생명체, 아니 외계인이 있고, 그 외계인이 내일 별안간 침공할 수도 있을 테니.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며, 꽤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한 번 현대물리학에 대해 공부했지만, 이 지구에서 시간과 공간이 하나라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어제 블랙홀 사진을 공개되었다. 20세기 초 그 존재조차 의심스러웠는데, 어제 실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래 동영상은 블랙홀에 대한 것이다. 지구 정도의 행성이 블랙홀이 된다면 1cm 정도의 크기가 된다고 한다. 1cm 정도의 크기인데, 중력은 ..

반듯이 누워

반듯이 누워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와 얇게 흔들리는 콘크리트 건물의 건조함에 묻혀 아주 짧게 내 삶을 되새기며 슬퍼한다. 이름 모를 바람이 들어와 잠시 내 몸 위에 살짝 앉았다 지나고, 매 순간 매 순간, 아니 그 때, 그리고 그 때도, 그리고 그 때도, 후회는 대양의 밀물처럼 밀려와 내 마음을 휩쓸고 지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긴다. 그건 피부가 쭈글쭈글해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던 곳이 아파지는 것도 아니다. 갑자기 잘 보이던 글자가 흐릿하게 보인다고 해서 나이가 드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후회와 한탄이 많아지는 것이다. 젊을 땐 후회스럽지 않던 것이 갑작스레 잘못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못으로 나이든 지금 아파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많이 ..

안경, 그리고 술자리

"내일이 지구의 종말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 술자리가 모든 존재들과의 추억을 나누는 자리였으면, 이 한 잔의 술은 보다 아름다울 거예요." 내일이 존재하지 않는 술자리. 아니, 모든 술자리에는 내일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술자리마다 화해하고, 포옹하며, 미안해하며, 실은 사랑했노라고 고백하는 이들로 넘쳐났다. 내 상상 속에서. 그렇게 취해간다. 안경을 바꾸었다. 바꿀만한 사정이 있었고, 그 사정 속에서 안경은 바뀌었다. 아주 어렸을 때, 80년대 초반, 안경 쓴 아이들이 멋있어 보이는 바람에, 몇 명은 의도적으로 눈을 나쁘게 하는 행위를 했고 나도 그 부류에 속했다. 형편없는 유년기의 모험은 독서에 파묻힌 사춘기 시절 동안 자연스레 안경 렌즈를 두껍게 하였다. 그렇게 사라져간다. 마음 속에서,..

과학자처럼 사고하기, 에두아르도 푼셋/린 마굴리스

과학자처럼 사고하기 - 에두아르도 푼셋 & 린 마굴리스 엮음, 김선희 옮김, 최재천 감수/이루 서평을 쓰기 위해 다 읽은 책을 다시 펼쳐 밑줄 그은 곳을 되새기며, 새삼스럽게 좋은 책이란 어떤 것인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실은 좋은 책일수록 서평 쓰기 어렵다. 그렇게 읽은 책 몇 권은 서평을 아예 쓰지 못하거나 한참 지난 후에야 써 올리게 된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받았고, 서평을 쓴다는 약속을 했다. 재미 있을 것이란 생각에 선뜻 받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책을 받은 후엔 늦었다. 기대 이상으로 좋은 책이기 때문이었다. 후회가 밀려들었다. 이런 책에 대한 인위적인(인위적으로 보이게 될) 서평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더구나 좋은 책에 대한 서평 쓰기란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