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227

흑석동 어느 건물 앞

길을 가다가 찍는다. 요즘은 핸드폰 카메라도 좋아,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군데군데 낡은 건물들이 남아있지만, 정말 많이 변하고 있다. 그리고 나도 변하고 있다. 변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많지만, 변해야만 견딜 수 있는 일상이 이어지니, 어쩔 수 없다. 요즘은 글이 거의 씌여지지 않는다. 심지어 서평 쓰기도 어렵다. 그만큼 글쓰기가 뒷전인 셈이다. 생각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밀려다닌다고 할까. 사정이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성당 풍경

마음이 스산하고 몸은 피곤하다. 꿈은 외롭고 발걸음은 정해진 궤도만 오간다. 나무와 본당 건물 사이의 전선만 없으면 어느 유럽 도시 풍경처럼 보일텐데. 저 풍경 사이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싶다. 그리곤 나오지 말아야지. 그렇게 사라진 몇몇 사람들은 나는 알고, 그들은 나를 모른다. 그렇게 사라진 그녀를 나는 알고, 그녀는 나를 잊었다. 가을 오는 소리에 살짝 놀라 궤도를 벗어나려고 했으나, 모든 것들은 정해진 대로 갈 뿐이다. 벗어난 그 곳마저도 예정된 궤도 위라는 걸. 그걸 알았다면, ... ...

misc.

수십년은 되었을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려놓는다. 한밤 중, 퇴근 후 마신 술이 부족해, 집에 들어와 마트에서 사다놓은 위스키를 꺼내 한 두 잔 들이키다가 그냥 취해버렸다. 아마 취한 내 마음과 달리 내 귀는 이브 몽땅의 목소리를 들으며 기뻐했을 것이다. 수백장의 음반을 놔두고도 듣지 못하는 요즘 내 신세를 보면, 뭐랄까, 음악을 듣는 것도 젊은 날의 사치같다. 지금은 그저 추억. 최근엔 몰트 위스키에 빠졌다. 와인에 빠졌다가 이젠 위스키로 넘어가는 중이다. 나이 탓도 있겠다. 아니면 더위 때문인가.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를 보면서, 역시 호크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독특하다. 그는 평면과 입체를 교묘하게 섞어놓으면서 그 사이를 응시하는 관객에게 도리어 묻는다. 너는 지금 무엇을 ..

대상포진, 혹은 꽃단

대상포진에 걸렸다. 예전엔 '꽃단'으로 불렸던 병이다. 수두바이러스가 몸 속에 숨어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진 틈을 타 다시 발병하는 병이다. 대체로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어서 악명을 떨치는 병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 중 일부는 걸렸는지도 모른 채 지나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마다 고통의 편차가 있다. 어떤 이는 너무 아파서 아예 움직이지도 못한다. 물집(수포)가 생기는 병이지만, 안 생기는 경우에는 대책 없는 병이다. 관절이 아픈 느낌이 지속되는데, 물집이 있으면 아 이거 대상포진이구나 하고 짐작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이게 뭔지 한참 헤매게 된다(의사도 마찬가지다). 특히 그냥 며칠 지나면 낫겠거니 하다가 된통 당하게 된다. 또한 보이지 않는 곳, 특히 등에 대상포진이 발병하는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

음반들, 그리고 우리들의 기다림

몇 번의 이사,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생의 변화 앞에서 음반들은 그 특유의 친화력과 생기를 잃어버렸다. 한 때 자신들의 소리를 보여줄 도구들마저 없었을 때, 아마 그들은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주중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토요일 오전, 음반들 한 무더기를 꺼내 한 번 정렬해 보았다. 다들 오래된 음반들이다. 심지어 존 케이지(John Cage)를 연주한 음반도 눈에 보이지만, 몇 번 들었던가, 언제 마지막 들었던가, 그런 기억마저도 없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알아줄 이를 만났을 때에만 그 빛을 발한다. 그건 그녀도, 그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대상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알리고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구차하고 쓸쓸한 일인가를, 한 번이라도 ..

기다림

기다림은 시간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가는, 느린 걸음이다. 동시에 마음의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심적 동요이기도 하다. 그것은 너무 미세해서 알아차리기 힘든 진동이자 떨림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예측가능성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희망이라든가 바람만 있을 뿐. 몇 분, 혹은 몇 시간 후, 또는 더 먼 미래의 어떤 결론을 알지 못하기에 기다림은 모험이며 방황이며 결국 우리의 영혼에게 해악을 끼칠 위험한 존재다. 그러면서 기다림은 누구, 언제, 어떤 일로, 어떻게에 따라 그 무늬와 색채가 달라지는 보이지 않는 풍경이다. 기다림은 다채로운 변화이며 파도이고 햇빛이 잘게 부서지는, 빛나는 물결같은 것이다. 그것은 마치 별의 운동처럼 한참을 들여다 보아야만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이런 봄날이었을까

이런 봄날이었을까, 가벼운 흰 빛으로 둘러싸인 꽃가루가 거리마다 마을마다 흩날리던. 내가 앙드레 드 리쇼의 을 읽고 아파했던 날은. 아주 오래 전이었다. 결혼하기 전이었고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지금도 있으려나, 그래서 봄이면 가슴이 설레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은 금기). 그리고 그 환상으로 사랑을 잃어버렸던 시절이기도 했다. 세상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았으며(이건 지금도 마찬가지), 사랑에 대해선 더더욱 까막눈이었다(지금도 그런 듯). 그 때 그 시절, 나는 을 읽었다. 기묘하고 아름답고 슬펐다. 알베르 까뮈가 격찬했고 조용히 번역 출판되었다가 거의 읽히지 않은 채 사라진 소설이었다. 몇 해 전 문학동네에서 재출간되었다. 나만 알고 있었으면 좋았을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기억을 더듬을 ..

최근

1. 최근 블로그 상에서 바로 글을 써서 올린다. 그랬더니, 글이 엉망이다. 최근 올린 몇 편의 글을 프린트해서 다시 읽어보니, 문장의 호흡은 끊어지고 단어들이 사라지고 불필요한 반복과 매끄럽지 못한 형용어들로 가득했다. 결국 나는 몇 번의 프린트와 펜으로 줄을 긋고 새로 쓰는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끼인 세대인 셈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끼인 세대.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지만, 읽기는 무조건 종이로만 읽어야 하는. 그래서 최근 올렸던 글을 프린트해서 다시 쓰고 고쳐 새로 올릴 계획이다. 얼마나 좋아질 진 모르겠지만. 2. 헤밍웨이의 를 읽고 있다. 무척 좋다. 번역된 문장들이 가지는 태도가 마음에 드는데, 원문은 얼마나 더 좋을까. 영어 공부를 열심해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번역된 셰익스피..

비는 더 이상 마음을 적시지 않고

내 마음에 비가 내리면 그대 마음에도 비가 내리던 시절이 있었다. 한 번 낙엽이 지고, 두 번 낙엽이 지고, 또 낙엽이 지고, 지난 번 낙엽 질 때 나와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벚꽃 피고 지고, 봄이 가고 오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그대 입술 옆으로 퍼지던 웃음의 향기에 취해 비틀거리던 여름날 그 바다 파도소리가 싱그러웠다. 그대 얇은 손길에도 가슴 조이며 땅 밑 뜨거운 용암의 흔들림을 느끼곤 했다. 그 열기에 내 마음이 녹아내리고 내 이성이, 내 언어가 녹아내려 흔적없이 사라지던 계절이었다. 그 계절이 한 번 가고, 두 번 가고, 또 가고, 더 이상 그 계절이 오지 않았을 때, 저 창 밖엔 거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지만, 그대 없는 내 마음엔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는다. 더 이상 우리들..

혼술과 커피에 대한 실존적 고찰

매일 아침 저녁, 또는 시간 날 때마다 일기를 쓴다. 특별한 내용은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과 종교적 기원을 적는다. 오늘 하루가 어떤 일들로 구성되었는지 적지 않는다. 그걸 적으려고 보니, 너무 길어질 것같기도 하고 그럴 정신적 에너지도 남지 않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작은 나이다. 앞으로 그 비율은 더 심해질 것이다. 딱히 지혜나 통찰을 가지지도 못했고, 그나마 있던 지식이나 상식도 얇게 스쳐가는 바람에 휘익 쓸려 날아가고 있는 늦겨울, 혹은 초봄이다. 낯선 이들과 교류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젊은 이들과 술을 마시거나 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감수성이 무뎌지거나 슬픔이 덜 하거나 쓸쓸함이나 고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외면할 뿐.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