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90

2023년의 대한민국이 싫다

두 아이의 아빠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너무 화가 나는 하루였다. 검찰, 경찰, 언론의 합작품이다. 그리고 자극적인 컨텐츠를 올리는 유튜버들과 무관심한 척하는 대중들의 묵인 아래 이루어진 일이다. 실은 며칠 전 아파트 화재 속에서 어린 딸들을 안고 뛰어내린 아빠의 부고 기사를 보면 열이 받아있었다. 방 안에서 담배 때문에 불이 났고, 그 담배를 피운 이가 70대 노인이라는 사실에, 그냥 지금 늙은이들이 젊은이들의 앞날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정치든, 경제든 ... 평일 교외 카페를 가보라. 한껏 꾸며 입고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로 가득하다. 실은 노인이라고 부르기도 그렇다. 60대, 70대여도 아직 젊게 보이니까.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이 젊을 때 열심히 일해 쌓아 올린 부라고 ..

<<서울의 봄>>을 보고

성탄절 연휴 때 아들과 을 보았다. 그냥 보고 난 다음 생각을 메모해본다. 1. 지금 60대는 80년대에 이십대 청춘을 보낸 이들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기사들을 보면 이들 대다수가 현 여당(국민의 힘)을 지지한다. 그들이 그들의 청춘을 어둡게 만들었던 신군부 세력의 정치적 후배들을 지지한다. 나는 그것에 심한 절망감을 느꼈다. 심지어 80년대 반정부 민주화 투쟁으로 젊음을 불태웠던 이들 중 일부는 신군부 세력의 정치적 후배들이 되었다. 더 나아가 뉴라이트의 핵심 주축이 되었다. 2. 어쩌면 이것은 한국인 특유의 성향이 개인 삶의 일관성이나 자신을 증명하는 세계관이나 가치, 철학을 한 번에 내팽개칠 수 있는 문화적, 심리적 토대를 형성하는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것이 심리적 변명으로 작용하여 ..

에라스무스 분위기

1. 발터 쾰러Walther Kohler의 표현을 빌자면, 그들은 "에라스무스-분위기Erasmus-atmosphere"에서 더욱 자유롭게 숨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에라스무스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대신 군중 속에 흩어져 있었다. 그의 메시지 자체는 실용적 의미가 거의 없었으며, 그의 메시지가 낳은 것은 운동이 아니라 분위기, 한밤 중의 순간적 불빛같이 막연하고 요정의 약속 같이 막연한 분위기였다. 루터파는 있었지만 에라스뮈스파는 없었다. -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 28쪽(문학동네) 2. 세상에 대해서 조금 더 안다고, 바른 생각을 하는 것도, 옳은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에서 정착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크라카우어의 생각처럼, 그저 어떤 막연한 분위기 속에 있을 뿐..

09.21

09.19. 기록을 한다. 예전엔 종이 위에 펜으로 그리거나 썼는데, 이젠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리며 글을 쓴다. 격세지감이다. 아마 지금도 고향집 다락방엔 수십년 전, 짝사랑하던 여고생의 흔적이 남은 일기장이 먼지를 먹고 있겠지. 그 땐 참, 가슴이 너무 떨려 제대로 걷지도 못했는데. 지금도 그럴까. 그런 일이 생기면 나쁜 일이 될꺼야. 정말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진지하게 생계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탓에, 어쩌면 무심하게도 무조건 작가가 되겠다고 여겼던 탓에, 직장 생활이 가끔, 자주, 예고 없이 어색하기만 했다. 자주 회사를, 직장을 그만 두었다. 일을 못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 없는 탓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일을 잘하는 것 이상으로 책임감도 중요한..

어수선하다

나라가 너무 어수선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개의 배경이 있다. 첫째, 아무 생각 없이, 또는 잘못된 생각/판단으로 선거 때 2번을 찍은 국민들이 있다. 그러니 그냥 2번을 지지하고 찍은 국민들이 책임지면 된다. 그러니 1번 찍은 이들은 그냥 놔둬라. 둘째, 전 정부/정권 책임자들이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대단히 성공적인 정부/정권이라고 믿는 듯하여 화가 난다. 심지어 그 정부의 국무총리는 반성은 커녕, 정치에 큰 야망을 두고 있으니, 한심하기만 하다. 힘 없는 야당의 모습은 그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지방에서 서점을 하는 전직대통령은 뭐랄까, 그 기분은 알겠지만, 너무 태평한 건 아닌가 싶다. 그냥 아무 활동도 안 했으면. 하지만 이건 그냥 사소한, 지극히 개인적이고..

짧은 생각,들

강렬한 더위가 이어졌다. 검은 도로는 불타고, 그 열기 앞에서 나는, 너는, 우리는 끝없이 움츠려 들었다. 그 거칠었던 폭염 전에는 긴 장마, 비의 계절이 있었다. 이러한 급격한 기후 변화의 원인은, 어쩌면 사유하는 나의 세계관, 근대 기계론, 혹은 도구적 이성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젠 그것도 철지난 유행이랄까. 그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생각엔 예상치 못한 평화가, 큰 전쟁 없이 이어진 사오십년 동안 인간은 다시 오만해진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 평화 속에서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리고 고통받았는가 하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 없지만. 어느 책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서로를 얼마나 죽였는가를 보았더니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그냥 걸핏하면..

칼날 위의 역사, 이덕일

칼날 위의 역사 이덕일(지음), 인문서원 요즘 역사책을 자주 읽는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 속에서 패권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나라들을 보니, 역사적으로 패권 국가였던 적이 있거나 그러한 가능성을 가진 나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19세기 전까지 일본은 패권국가가 된 적이 없었지만, 그 이후로 일본은 패권국가로 나아갔다. 그러나 조선은 황당할 정도로 무력한 상태였으며 패배주의에 휩싸였다. 리더십이 무너진 지는 오래되었으며 선비 정신이라는 것도 변화하는 세계 앞에서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이었다. 솔직히 내가 학교에서 배웠던 국사는 나에게 무엇을 던져 주었는지 의문스러울 지경이었다. 더 큰 일은 제대로 된 역사 수업을 받지 못했으므로, 제대로 된 역사를 보는 ..

얼굴 없는 인간, 조르조 아감벤

얼굴 없는 인간 - 팬데믹에 대한 인문적 사유 조르조 아감벤(지음), 박문정(옮김), 효형출판 배가 침몰 중인데, 우리는 배에 실린 화물을 걱정하고 있다. - 히에로니무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을 때, 마스크를 둘러싼 논쟁이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었다. 한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는 마스크를 잘 쓰고 다녔지만, 서구인들은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며, 각자 생각하는 것도 다를 듯 싶지만, 나는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애초에 모자도 잘 쓰지 않고 마스크도 잘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마스크를 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마스크를 둘러싼 논의는 서구 사회에서, 그리고 아감벤에게 있어서 상당히 중요했으며 깊이 생각해볼 문제..

in my life, 2023.04.22

1.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많은 생각에 휩싸였다.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한국 사회에 대해서. 결론도 없지만, 더구나 결론을 내리기에 이제 남은 생도 얼마 되지 않으니까. 최근에 읽는 책들을 보면,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원래 그래왔던 것들, 그렇게 기록되지 않았던 옛날부터 내려온 어떤 것들이 층층히 쌓여 온 것임을 깨닫곤 절망한다. 오래 외국생활을 한 친구에게 아직 한국은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타자의 시선으로 한국을 바라볼 때마다 느끼는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한 조직에서의 승진이 정치적 역량으로 결정되는 모습에 이젠 포기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 또한 답답함을 느꼈다. 2. 시간이 지..

misc. 23.04.11

같은 성당을 다니는 원양 컨테이너선 선장이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이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배에는 컨테이너만 있고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몇 달을 배 위에서, 바다 위에서 보내야 하니, 상당히 건강도 그렇거니와 심적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직업임을 미처 몰랐다. 배에 오르기 전에 이런저런 검사를 받은 후에 오른다고 하니. 저 끝없고 평온한 바다만 보고 나도 저 바다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한때의 바람일 뿐이다. 요즘 역사책과 지리정치학이나 경제학 책에만 손이 가게 된다. 특히 한국 역사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서양사 책들보다 접근성이 떨어진다. 찾으면 아이들을 위한 책이나 중고등학생용이 있을 뿐이다. 아니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대중 교양 서적이 대부분이다. 좀 깊이 있는 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