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17

성 바르톨로메오 조각상

마르코 다그라테(Marco d'Agrate, 1504-1574)의 조각상 은 밀라노 두오모 성당 안에 있다. 내가 왜 이 작품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보고 끔찍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 예수 그리스도의 12사제 중 한 명인 바르톨로메오 성인은 아르메니아 지역에서 산 채로 피부가 벗겨지는 형을 당하며 십자가에 묶인 채 순교하였다. 그래서 바르톨로메오 성인의 상징은 벗겨진 살가죽과 칼이다. 아래 조각상에서 몸을 두르고 있는 것이 바로 벗겨진 살가죽이다. 그래서 몸은 처참할 정도로 드러나 보는 이를 아프게 한다. 전형적인 매너리즘(*) 작품으로 흔들리는 신앙을 잡기 위한 처절함이 드러난다. 16세기는 심리적 차원에서 중세적 세계관과 근대적 세계관이 격렬하게 부딪히는 시대다. 양식적으로는 근대로 넘..

PC 바탕화면을 바꾸다, 조지 시걸

사무실 PC 바탕화면을 바꾸었다.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조지 시걸의 82년도 작품, 'Wendy with chin on hand'로 옮겨간다. 조지 시걸. 내가 사랑하는 작가. 작품 활동 초기, 살아있는 사람의 전신을 라이프캐스팅(Life Casting)하던 시기를 지나 일부만 떨어져 나온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떨어져 나온다는 것에 대한 회한이나 그리움,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의례 그래야 되는 시기가 왔고 그래서 일부만 떨어져나왔다. 살아있는 사람을 본을 떴다고 해서 라이프캐스팅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실은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살아있어도 죽은 듯이 살아야할 때가 있고 죽었으나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우리 옆에 머물기도 한다. 이 작품을 보고 너무..

어빙 펜Irving Penn의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

어빙 펜(Irving Penn)의 사진을 자주 보았지만(그만큼 유명한 탓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전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형적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어빙 펜 이후의 많은 패션 사진 작가나 사진기자들이 어빙 펜의의 사진을 따라하였기 때문임을. 최봉림의 글을 읽으면서 어빙 펜과 함께, 어빙 펜이 찍은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새롭게 알게 되었다기 보다는 아마 관심에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미스에 대해서. 회화에 잭슨 폴록이 있다면 조각에는 데이비드 스미스가 있다고 해야 하나. Portrait of Smith by an unknown photographer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는 피카소, 홀리오 곤잘레스(Julio Gonzale..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 기시 마사히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기시 마사히코(지음), 김경원(옮김), 이마, 2016 현대적인 삶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이해불가능하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는 지도. 그래서 그 조각이나 파편들을 이어붙여 우리가 이해가능하거나 수용가능한 형태로 만들고자 하는 학문적/이론적 시도는 애체로 불가능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삶이나 그 삶 속의 사람들, 사건들, 이야기들을 분석하고 체계화하려는 모든 시도들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그 조작과 파편들의 일부이거나, 그 일부를 묘사한 글이나 풍경이 전부이지 않을까. 그리고 기시 마사히코의 이 책, 은 그렇게 시작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주욱 늘어..

잠자는 뮤즈, 브랑쿠시Brancusi

출처: http://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88458 잠을 자고 있는 두상이라는 주제에 대해 콘스탄틴 브랑쿠시는 거의 20년 이상 몰두했다. '잠자는 뮤즈'를 구상하고 작업할 때, 그는 근본적인 형태와 단순화된 세부를 위해 개념들(ideas)을 줄여나갔으며, 이를 위해 극적인 요소와 디테일을 피했다. 그는 관성으로 인해 무겁게 내려앉은, 그러면서 평화롭게 쉬는, 바닥에 엎드린 머리의 모습으로, 나른함(languor)의 본질을 만들었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설명을 번역함. * * 저런 잠이라면, 영원할 것만 같다. 1910년, 브랑쿠시는 왜 저런 잠을 꿈꾸었을까. 잠은 죽음과 맞닿아있고 꿈과 연결된다. 삶은 멈추고 운동하는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네 태양..

알렉산더 칼더Calder 전, 리움, 2013.7.18 - 10.20

움직이는 조각 알렉산더 칼더 Alexander Calder July 18 - October 20, 2013 리움Leeum, Samsung Museum of Art 전시를 보고 난 다음, 리뷰를 쓰기 위해 몇 편의 논문들과 자료들을 모아두었는데, 역시 직장인이란 늘 시간이 없다보니, 이젠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그냥 메모만 해둔다. 2013년 여름에 있었던 이 전시는 총 118점이 전시된 국내 최대 규모의 알렉산더 칼더 회고전이었다. 칼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무척 뜻깊은 자리였으며, 칼더를 모르는 이들에겐 칼더의 조각 인생 전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서커스 장면 Circus Scene1929Wire, wood and paint127 x 118.7 x 46 cmCalder Foundation..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리움, 2012.10-2013.2

아니쉬 카푸어 Anish Kapoor 2012.10.25 - 2013.2.8 삼성미술관 Leeum 황량한 현대 미술의 첨단에 카푸어가 불과 몇 명의 위대한 아티스트들과 함께 우뚝 서 있음은 하나의 구원이다. 시각의 초월적인 기능, 아트의 건전한 엘레멘트의 구사, 풍요로운 표현방식, 긍정적인 미지의 암시 등으로, 그 환기력의 유효성을 정면에서 입증해주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 이우환 * * (리움에서 출간된 아니쉬 카푸어 도록. 잘 만든 도록이다) 전시를 본 것은 일 여년 전이지만, 아니쉬 카푸어는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책상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아니쉬 카푸어의 도록 탓도 있었지만, 전시 공간 안에서 보여주는 놀라움과 경이는 현대 미술의 새로운 영역을 여는 듯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도록 - 아..

멈춰서서, 이우환 시집

멈춰서서 이우환 시집, 성혜경 옮김, 현대문학 이우환 Lee Ufan, 대화(Dialogue), 2011 그의 작품들이 좋아서일까, 이 시집은 그의 회화, 조각, 설치 작품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작고 단단한 설명서처럼 읽혀진다. 내가 알기로, 예술가들 중에서 이우환만큼 명징(明澄)한 글을 쓰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는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옮겨도 다르지 않다. 그는 일본 모노하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이론가이며, 현대 철학과 현대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탁월한 실천력으로 현대 일본 미술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일본 국어 교과서엔 이미 그의 글이 실려있고, 일본어라는 걸 제외하면, 그는 검증 받은 글쟁이이다. 이우환 Lee Ufan, 대화 Dialogue (2008) (사진 출처: art..

진폭, 이우환

진폭 자코메티가 모델에게 육박해가면, 동시에 모델 또한 자코메티에게 닥쳐온다. 자코메티는 자꾸자꾸 내쳐 가 이윽고 모델 너머까지 나아간다. 그때 모델 또한 점점 돌진해서, 자코메티를 지나 훨씬 이쪽으로까지 전진해 버린다. 도전해가는 힘과 덤벼오는 힘이 세차게 겹쳐지는 가운데, 두 개의 대상은 깎여나가, 마침내 하나의 뼈가 되어남겨진다. 이렇게 해서 생긴 대립의 축은, 자코메티를 넘고 모델을 넘어서 -. 그것은 끊임없이 커다란 진폭을 불러일으키고, 스스로를 공간의 펼쳐짐 속에 숨겨 지운다. 자코메티는 이것을 거리의 절대성이라 일컬었다. 이러한 시선을 따른다면, 본다는 것은 대상과 자신의 치열한 사랑의 운동이 겹치어, 드디어 투명한 여백이 된다는 것인가. - 이우환, 시집 중에서 자코메티, Three 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