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21

다른 곳으로 가시는 본당 신부님들

몇 년만에 조계종을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 사이 조계종 내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것인지, 아니면 주변을 새로 단장한 것인지, 모습이 좀 변한 듯 했다. 건너편에도 템플스테이 안내센터가 있었고. 대도심 중심지에 큰 사찰이 있는 것도, 그 사찰 앞으로 머리를 민 스님들이 오가는 풍경이 새삼 흥미로웠다. 젊은 스님들 몇 명이 앞을 스치며 지나갔다.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나이였다. 아니면 삼십대 초반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사연으로 저들은 승려가 되었을까 생각했다. 환하게 웃으며 서로 장난을 치며 거리를 걷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당 막내 신부님을 떠올렸다. 사제 서품을 받고 바로 본당 보좌신부로 와, 영성체반과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과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이들의 부..

현대적 쓸쓸함,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와 홀로

토요일 아침, 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쓰레기를 버리고 ... 아, 겨울인가, 그러기엔 춥지 않아, 이 불길함이란.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마을에 백 명의 사람이 있고 그 중 한 명이 살해당한다. 사람들은 서로 웅성웅성거리며 누가 범인인지 추측해 대다가 마을 사람들과 교류가 적어 오해를 사고 있던 한 명을 지목하곤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변하였음에도 교수형에 처해버린다. 그리고 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변호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심하게 때리곤 마을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다른 사람 한 명이 또 살해당하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가 살인하지 않았음을 막연하게 추측하곤 외부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한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죄가 없는가? 내가 이런 마을에서 살고 있다면,..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 이수정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 이수정(지음), 메디치 이런 책들이 늘어나야 된다. 어제처럼 외부로, 세계로, 선진국으로 시선을 돌려 남의 것들을 수입하고 배우던 시기는 지났다. 이제는 우리 내부로 눈을 돌려 관찰하고 보듬으며, 보다 행복한 미래를 모색해야 되는 시절이 왔다. 그래서 이 책은 참 소중하다. 스스로 발품을 팔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이슬람사원, 모스크를 찾아 그 곳 사람들을 만나 기록하며, 진솔하게 서술하고 있는 이 책, 바로 이다. 솔직히 기시 마사히코같은 사회학자가 써야 할 책이다. 기시 마사히코를 적기 전에 한국의 사회학자들을 더듬어 보았으나, 안타깝게도 없었다. 저자인 이수정은 아랍어 전공이라는 이유로, 그나마 아랍, 혹은 이슬람에 대한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모스크를 돌아다니며 이 책을 쓴 ..

리추얼의 힘, 캐스퍼 터 카일

리추얼의 힘 The Power of Ritual 캐스퍼 터 카일(지음), 박선령(옮김), 마인드빌딩 우연히 집어 든 책에 금세 빨려 들었다. 리추얼Ritual, 음, '제의적인 것의 힘'이라고 옮겨야 할까. 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폭넓은 의미로 해석되기에 그냥 리추얼의 힘으로 옮겼을 것이다. '제의'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제사를 떠올리는데, 교회 예배나 성당의 미사, 절의 법회 등도 일종의 제사다. 더 나아가 이 책에서는 신성한 것, 영적인 것을 떠올리고 이와 관련된, 정기적이고 반복되는 모든 활동을 리추얼로 해석한다. 따라서 혼자 영적인 것을 떠올리며 명상에 빠지는 것도 리추얼이 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이러한 리추얼과 관련된 활동들이 사라지거나 공동체에서 많이 희석되어 여러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사사키 아타루(지음), 송태욱(옮김), 자음과모음 재미있게 읽었다. 의외로 금방 읽을 수 있다. 일본 학자의 책들은 의외로 쉽고 명쾌하게 읽힌다. 가라타니 고진도 마찬가지이고 사사키 아타루도 그렇다. 이와 반대로 한국 학자들의 책은 상당히 어렵고 난해하며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는 나조차 어렵다. 실은 쉽게 씌여진 책은 너무 뻔한 이야기만 적고 있어 시간이 아깝고 깊이를 가진 듯한 책은 이 학자는 자신도 알고 쓴 것일까, 그 스스로도 이 단어나 이 개념을 제대로 알고 쓴 것일까 되묻게 된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한국 학자가 쓴 책에는 손을 대지 않고 번역서에만 손이 갔다. 다만 이건 내가 한창 공부할 때이니, 지금 나오는 책은 어떤지 잘 모른다. 최근 읽은..

종교, 신천지, 카불, 아프가니스탄

1972년 카불, 아프가니스탄 너무 유명한 사진이라서 굳이 설명을 덧붙여야 할까. 1972년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시내를 걷는 젊은 여성들의 사진이다. 그리고 40여년 후 이들의 자녀들, 혹은 그 손녀들은 아래와 같이 입고 길을 걷는다. 2013년 아프가니스탄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왜 저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이유를 묻는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오랜 내전, 외세 -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 - 의 갈등과 간섭, 그리고 지원으로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이슬람 근본주의에 기반한 나라를 세운다. 알카에다도 탈레반이 지배하던 아프가니스탄에 자리를 잡는다. 불과 수십 년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의 공격으로 탈레반이 ..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 고상균

수도원 맥주 유럽 역사를 빚다고상균(지음), 꿈꾼문고 책을 읽고 난 다음, 맥주 생각이 나긴 했다. 하지만 젊은 하루키의 소설만큼은 아니다. 맥주를 간절히 원하게 만드는 건 역시 맥주 소개서가 아니다. 와인 가이드를 보며 와인 생각이 간절해지지 않듯이. 수도원 이야기(혹은 종교이야기)와 맥주 이야기를 섞어놓았다는 점에서 흥미롭지만, 역사책도 아니고 전문적인 맥주 소개서적도 아니다. 이 둘 사이에 걸쳐있는 산문집 정도. 루터의 부인이자, 한때 수녀이기도 했던 카나리나 본 보라의 맥주 제조 실력이 뛰어났다는 이야기는 특히 흥미롭다. 전체적으로 쉽게 읽히고 재미있지만, 나같은 독자에겐 적당하지 않다. 그냥 맥주 전문 서적이었으면 더 흥미진진했을 텐데, 맥주 이야기와 수도원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며 자주 애매해지..

배움에 관하여, 강남순

배움에 관하여 - 비판적 성찰의 일상화 강남순(지음), 동녘, 2017 "두려움과 떨림으로 당신 자신의 구원을 끊임없이 이루어 내십시오. Work out your salvation with fear and trembling" - 빌리보서 2장 12절- 키아케고르, 중에서 얼마 전 '인문학 유행과 인문학적 사고'라는 짧은 포스팅 하나를 올렸다. 어느 신문 칼럼에서 인용된 강남순 교수의 글이 상당히 시사적이라 올린 포스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 읽기 전에는 딱딱하고 건조한 이론서로 생각했는데, 막상 읽고 보니 짧은 글들을 모은 산문집이었다. 하지만 짧은 글이라고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인문학적인 통찰이 묻어났다. 다양한 학자들을 인용하였으며, 자신이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드러내..

숨은 신을 찾아서, 강유원

숨은 신을 찾아서강유원(지음), 라티오 짧고 간결하다. 신에 대한 책이면서 신앙에 대한 책이며 동시에 근대 철학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사도 바울의 신과 고대 그리스의 신을 이야기하고 아우구스티누스와 데카르트를 이야기한다. 근대철학의 관점이 아니라 신앙의 관점에서 파스칼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실은 나도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세례를 받았으며 신앙을 편안하게 받아들였다. 도리어 편안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나에게 놀라웠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가 이미 종교를 부정하였고 이젠 신앙은 중세의 유적처럼 변해버린 이 시대, 현대의 회의론자들은 끊임없이 신과 신앙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할 때, 이 책은 놀라운 성찰을 보여준다. 데카르트가 신의 관념을 두고 신의 현존을 증명해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겸손함, 경건..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The Children Act 이언 매큐언 Iwan McEwan(지음), 민은영(옮김), 한겨레출판 살만 루시디(Salman Rushdie)가 추천한 이언 매큐언의 . 소설을 읽는 내내, 루시디가 추천하는 몇 권의 책 안에 들 정도는 아닌데 하는 생각하지만, 다 읽고 난 다음 그가 왜 이 소설을 왜 추천했는지 알게 된다. 몇몇 이들은 이 소설을 영국의 아동법 등의 여러 법률에 근거한 법과 종교의 문제로 해석하지만, 그건 잘못된 해석이다. 판사가 나오고 소설의 많은 장면들이 법정이거나 법과 관계된 사람들로, 혹은 종교와 관계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서 이를 법과 종교의 문제, 그 갈등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면, 모든 이들이 탁월한 소설 비평가가 될 것이다. 결국 읽는 이에 따라 소설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