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18

토요일 출근

지하 1층의 공기는 무겁고 차갑고 쓸쓸하다. 텅빈 주말의 프로젝트룸은 예전과 같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주말 출근도 마다하지 않던 이들도 이젠 주말에 출근하지 않는다. 한 두 명씩 주말 출근을 하지 않기 시작하면서, 주말 출근하는 이들만 호구처럼 보이던 과도기를 거쳐 지금은 관리자나 성실한 정규직 직원만 가끔 주말 출근을 한다. 어쩌다 보니, 몇 년째 여의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계속 여의도 쪽 프로젝트만 하게 되었다. 원래 업무가 프로젝트 관리가 아닌데, 누군가 잘못하면 내가 가서 책임을 지게 되었다. 나라고 해서 모든 걸 잘 할 수 없기에, 늘 피곤하고 스트레스로 둘러쌓인 환경에 놓여져 있다. 꿈은 멀리 사라지고, 그 멀어진 거리만큼 내 피부는 건조해지고 푸석푸석해졌..

주말

목요일 프로젝트 회식이 있었고 금요일 그 프로젝트에 위기가 찾아왔다. 개발된 소스를 전체적으로 전면 수정해야 될 정책 이슈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요일 부재 중 전화들과 예상치 못한 메일 몇 통으로 무너졌다. 주말 일과를 멍하게 보낼 수 밖에 없었다. 명확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넋 놓고 있을 수도 없어서 머리를 복잡했다. 하지만 몸은 계속 멍했다. 가족에게 짜증을 부렸고 스스로에게 짜증을 냈다. 올핸 단풍을 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주말에 어떻게든 어디 여행이나 갈까 했지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내일은 오고 나는 그 어떤 솔루션도 찾지 못한 채 출근을 할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뭔가 해결책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뭔가 탁월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저 포기하지 않고 묵..

음반들, 그리고 우리들의 기다림

몇 번의 이사,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생의 변화 앞에서 음반들은 그 특유의 친화력과 생기를 잃어버렸다. 한 때 자신들의 소리를 보여줄 도구들마저 없었을 때, 아마 그들은 나를 원망했을 것이다. 주중의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토요일 오전, 음반들 한 무더기를 꺼내 한 번 정렬해 보았다. 다들 오래된 음반들이다. 심지어 존 케이지(John Cage)를 연주한 음반도 눈에 보이지만, 몇 번 들었던가, 언제 마지막 들었던가, 그런 기억마저도 없다. 아름다움은 그것을 알아줄 이를 만났을 때에만 그 빛을 발한다. 그건 그녀도, 그도, 사랑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 인생도 그럴지도 모른다. 어떤 대상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알리고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아프고 구차하고 쓸쓸한 일인가를, 한 번이라도 ..

텅빈 주말의 사소한 희망

설 연휴가 지난 어느 토요일, 종일 집에 틀어박혀 두 권의 책을 다시 펼쳤다(리뷰를 쓰지 못했기에). 젤딘의 과 바라트 아난드의 . 그리고 한 권의 책, 게오르그 짐멜의 를, 억지로 다 읽었다,고 여기기로 했다. 과 를 정리해 블로그에 올렸다. 오랜만에 트래백(trackback)을 해볼까 했더니, 네이버 블로그엔 그런 기능이 아예 없었다. 아난드는 콘텐츠의 미래는 '연결관계connection'에 있다고 했는데... 아이와 함께 노량진수산시장에 가서 전복과 산낙지를 샀다. 며칠 전부터 전복 스테이크를 먹고 싶다고 해서 주말에 간 것인데, 살아있는 낙지를 보더니, 그것도 먹고 싶다고. 결국 전복과 산낙지를 사와 집에서 산낙지부터 회로 준비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걸 자르려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거의 ..

일요일 오후 사무실

주말 난지캠핑장에 갔다. 동네 지인들과 함께 간 곳은 잠을 자러 온 곳이라기 보다는 술을 마시러 온 공간 비슷했다. 사진 속으로 보이는 공간들은 모두 잠을 잘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이 흙먼지로 쌓여 있었다. 몇 번을 닦아냈지만, 계속 흙이 묻어나와 불편했고 결국 아침까지 술을 마시다가 집에 올 수 밖에 없었다. 밤바람이 다소 시원해진 탓에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긴 했지만, 토요일은 종일 잠만 자는 불상사가.... 토요일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보니, 어둠이 내려 앉은 도시의 풍경이 들어왔다. 매번 보는 풍경이라 익숙하지만, 이 풍경도 보지 못하면 꽤 보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하긴 매일 바다를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직도 나는 바다 앞에 가서 살고 싶은 바람을 버리지 못했다..

일요일 출근

1. 봄날이 간다. 여름이 온다. 비가 온다는 예보 뒤로 자동차들이 한산한 주말의 거리를 달리고 수줍은 소년은 저 먼 발치에서 소녀의 그림자를 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그 사이로 커피향이 올라오고 내 어깨에 매달린 가방의 무게를 잰다. 내 나이를 잰다. 내 남은 하루, 하루들을 세다가 만다. 포기한다. 2.포기해도 별 수 없는 탓에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게 된다. 포기해도 된다면, 포기가 좋다. 내려놓든가, 아니면 그냥 믿는다. 포기를 해도 남겨진 삶은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포기는 그저 단어일 뿐, 행동은 아니다. 3. 비가 내리는 날 저녁 황급히 들어간 카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 저녁 식사의 수선스러움을 기억한다.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일상. 그런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어느 일요일

봄, 바람은 사무실 안으로도, 내 마음으로도, 그대 가슴으로도 밀려들지 않는다. 늘, 그렇듯, 우리에게 싱그러운 바람은 비켜나간다. 그렇게 청춘은 지나갔고 노년은 음울한 기운을 풍기며 낮게 깔려 들어와 자리잡는다. 노안이 시작되었다,는 말을 무심결에 했다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자랑은 아니지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젊은 시절 상상했지만, 마치 SF 영화와 같다는 걸 나이 들어서야 안다. 이런 비-일치는 우리 생애 전반을 물들이고도 모자라, 이 도시를, 이 나라를, 이 지구를 물들인다. 그래서 엘레야의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있다'고 말한 것일까. 그 때 그녀의 손가락 끝을 잘 살펴볼 걸, 지금에서야 후회한다. 일요일 오후, 몇 시간 일을 하고 난 다음, 남은 일을 체크하..

카페, 프로젝트 사무실, 쓸쓸한 일요일

1.너무 화창한 일요일, 사무실에 나왔다. 일요일 나가지 않으면 일정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나갈 수 밖에 없었지만, 애초에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잘못된 채 시작되었다. 하긴 대부분의 IT 프로젝트가 이런 식이다. 프로젝트 범위나 일정이 제대로 기획되었더라도 삐걱대기 마련이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사무실에 나와 허겁지겁 일을 했다. 오전에 출근해 오후에 나와, 여의도를 걸었다. 집에 들어가긴 아까운 날씨였다. 그렇다고 밖에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전시를 보러 가긴 너무 늦었고 ... 결국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책이나 읽다 들어가자 마음 먹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5월 햇살은 따스함을 지나 따가웠다. 봄 무늬 사이로 뜨거운 여름 바람이 불었다. 길거리를 지나는 처녀들의 얼굴엔 미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