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30

현대적 쓸쓸함, 그리고 스타벅스 커피와 홀로

토요일 아침, 국을 끓이고 밥을 짓고 쓰레기를 버리고 ... 아, 겨울인가, 그러기엔 춥지 않아, 이 불길함이란. 가끔 이런 상상을 하곤 했다. 마을에 백 명의 사람이 있고 그 중 한 명이 살해당한다. 사람들은 서로 웅성웅성거리며 누가 범인인지 추측해 대다가 마을 사람들과 교류가 적어 오해를 사고 있던 한 명을 지목하곤 자신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강변하였음에도 교수형에 처해버린다. 그리고 그가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변호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심하게 때리곤 마을에서 쫓아내 버린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다른 사람 한 명이 또 살해당하고,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가 살인하지 않았음을 막연하게 추측하곤 외부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한다. 과연 마을 사람들은 죄가 없는가? 내가 이런 마을에서 살고 있다면,..

23년 늦가을 어느 날

작은 가방을 앞으로 돌려맨 그녀는 9호선 급행 열차의 문이 열리자 곧바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누구보다 빨리 돌진했다. 마치 죽음을 각오한 듯 비장한 돌진이었다. 새치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 광경을 본 나는 일순간 공포에 휩싸였다. 삶은 돌진이 아니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종종 자신의 일상을, 인생을, 세계를 규정짓는다. 열차 안 가득 빼곡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 그녀 위로 다른 사람들이 다시 쌓이고 출입문이 닫히고 다음 역을 떠난 전동 열차를 보면서 다양한 대안들을 떠올렸다. 자신의 작은 행동들이 쌓여 결국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자주 잊어버린다. 이러니 세상 탓을 해야할 것도, 자기를 탓하게 된다. 뒤늦은 반성과 후회로 자신을 보니, 모든 게 자기 탓이..

가을 감기와 르네 샤르

르네 샤르(Rene Char, 1907 - 1988). 번역서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내가 읽었던 많은 프랑스 문인들이 한결같이 애정을 표시했던 시인은 르네 샤르였다. 시에 대한 번역은 반역일 지 모르나, 여러 개의 번역들 중 하나의 번역일테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감기에 걸렸다. 아이가 먼저 A형 독감에 걸리고, 내가 이어 걸렸다. 하루는 전철을 타고 나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집으로 들어와 누웠다. 그 이후 몇 주가 지났으나, 목은 계속 아픈 느낌이다. 한 번 그렇게 아프고 나니, 체력 회복이 쉽지 않다. 휴식이 필요한데, 밀려드는 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연말까진 이 모드일 듯하여, 걱정이다. 먼저 커피부터 줄여야 하는데, 오래된 습관을 바꾸기란 닥치지 않은 공포와 마주하는 듯하여, 쉽지 않..

일요일 새벽, 잠에서 깨다.

일요일 새벽. 침대에서 일어나 서재까지 걷는다. 아주 짧은 거리. 나이 때문인가 운동 부족인가 자주 아프다. 세수를 하다가 코피가 터졌다. 코피가 터질 만하다. 어젠 오후 내내 도서관에 있었다. 보고서 몇 개를 살폈고 책 한 권을 읽었다. 꼼꼼하게 읽는다면 종일 걸릴 일이지만, 아는 부분은 대강 훑으면서 읽어 가능한 일이었다. 인구 붕괴라고 언론에서 떠들어댄다. 인구가 붕괴되는데 크게 일조한 언론이 떠들고 있으니, 기분이 상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오른다고 난리이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 떨어진다고 난리인 언론이다. 그리고 그 언론을 읽거나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더 문제다. 유튜브에는 클릭을 유도하는 가짜 기사들, 가짜 정보들이 떠돌아다닌다. 솔직히 송중기가 자신의 아내에 대해선 ..

혼술과 커피에 대한 실존적 고찰

매일 아침 저녁, 또는 시간 날 때마다 일기를 쓴다. 특별한 내용은 없다. 그냥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자라는 말과 종교적 기원을 적는다. 오늘 하루가 어떤 일들로 구성되었는지 적지 않는다. 그걸 적으려고 보니, 너무 길어질 것같기도 하고 그럴 정신적 에너지도 남지 않다.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작은 나이다. 앞으로 그 비율은 더 심해질 것이다. 딱히 지혜나 통찰을 가지지도 못했고, 그나마 있던 지식이나 상식도 얇게 스쳐가는 바람에 휘익 쓸려 날아가고 있는 늦겨울, 혹은 초봄이다. 낯선 이들과 교류할 기회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젊은 이들과 술을 마시거나 대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감수성이 무뎌지거나 슬픔이 덜 하거나 쓸쓸함이나 고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외면할 뿐. 다시..

요즘, 자주, 스타벅스엘

요즘, 자주, 스타벅스엘 간다. 오늘의 커피를 시킨다. 기다린다. 5분. 3분. 2분. 1분. 커피를 받아들고 걷거나 앉는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낯설다. 익숙한 풍경 속의 낯선 나. 시간이 갈수록 내가 낯설어진다. 익숙한 나는 저 멀리 있고 낯선 내가 나를 드리운 지도 몇 년이 흐른 걸까. 나는 익숙한 나를 숨기고 낯선 나로 포장한 지도, 무심히 보내는 오월 봄날처럼 둔해진 건가. 요즘, 자주, 읽지 못할 책을 펼친다. 롤랑 바르트. 그의 문장을 마지막으로 읽었던 게 언제였을까. 오직 바르트만이 줄 수 있는 위안. 그건 언제였던가. 누군가를 만나 바르트 이야기를 하고 바르트 이야기를 하며 커피를 마시고 바르트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신 적은 언제였던가. 바르트가 이야기한 사랑과 문학과 사진과 그 자신을..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안경을 바꿔야 할 시기가 지났다. 나를,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신경쓰이게 한다. 글자가 흐릿해지는 만큼 새 책이 쌓이고 잠이 줄어드는 만큼 빨리 지치고 상처입는다. 변화는 예고 없이 방문하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곤 사라지며 흔적을 남긴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빠르게 늘어나 거의 매일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노트북이 가벼워진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가벼워질수록 이 녀석이 자주 나타난다. 사무실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까페에서, 심지어 집 거실에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메일이 오고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온다. 미팅을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근처 카페에 들어와 메일을 확인하고 일을 한다. 그렇게 오후에서 저녁이 되었다. 또 야근이었다. 스트라다..

동네 카페

계절과 계절 사이. 도로와 도로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그 사이에 앉아 책을 읽으며 창 밖과 창 안쪽을 번갈아 바라다보았다. 풍경 안에 있지만, 풍경 밖으로 계속 밀려나갔다. 단어들이 쉴 새 없이 떠올랐지만, 그 어느 것 하나 문장이 되지 못했다. 복 없는 단어들이여. 결국 사라질 것들이다. 고비 사막에서 발견되었다는 미이라의 뉴스가 떠올랐다. 하지만 가고 싶은 곳은 타클라마칸 사막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모두 사막 속으로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토요일 오전, 동네 카페에 앉아 이 사람, 저 사람 보면서 잠시 나를 잊었다. 내가 있는 곳, 내가 처한 곳, 내 앞 절벽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스테이지 나인

퇴근길, 우연히 마주친, 새로 생긴 동네 더치 커피 전문점, 스테이지 나인. 그리고 잠깐 동안의 커피 여행. 짧고 굵은 목넘김, 낮고 은은한 향기, 초봄 햇살이 빌딩 사이로 사라지고 그 틈새를 물들이는 어둠. 출렁이는 어두움이 입술에 닿을 때, 살짝 미소를 짓는다. 아, 나는 역시 예가체프구나. 우아하고 깊은 시원함. 시큼함. 쓸쓸함. 허전함. 지난 청춘 깊이 숨겨져 있던, 늙어가는 피부 아래 잠겨있던, 그 기억이 무심한 거리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함께 다가오는 공포여. 내 삶, 미래의 두려움이여. 쫓기듯 뭉게, 뭉게, 뭉게위로, 위로, 올라가는 내 삶의 진정성이여, 모든 것을 앗아가는 들뜬 모험이여, 얼마 남지 않은 내 영혼의 불꽃을 앗아갔던 사랑이여.

어느 일요일 새벽

비 오는 토요일, 거칠고 가느다랗게 물이 내려가 커피에 닿는 순간, 참 오랜만이다,라고 속삭였다, 스스로. 내가 나에게 낯설어져 가는 40대구나. 실은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지각은 없고 누군가가 나이가 들어가는구나를 보며, 내 나이를 되새기게 된다. 아침에 내린 커피를 다음날 새벽까지 마시고 있다.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은 마음까지 어수선하게 만든다. 미하일 길렌의 음반을 꺼내 듣는다. 베토벤이다. 베토벤도 참 오래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살고 있었던 걸까,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