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 2

요즘 근황과 스트라다 로스터스 STRADA ROASTERS

안경을 바꿔야 할 시기가 지났다. 나를, 우리를 번거롭게 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신경쓰이게 한다. 글자가 흐릿해지는 만큼 새 책이 쌓이고 잠이 줄어드는 만큼 빨리 지치고 상처입는다. 변화는 예고 없이 방문하고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곤 사라지며 흔적을 남긴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빠르게 늘어나 거의 매일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 노트북이 가벼워진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가벼워질수록 이 녀석이 자주 나타난다. 사무실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까페에서, 심지어 집 거실에까지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메일이 오고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온다. 미팅을 끝내고 사무실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근처 카페에 들어와 메일을 확인하고 일을 한다. 그렇게 오후에서 저녁이 되었다. 또 야근이었다. 스트라다..

밤 11시 합정역 사거리 건널목

지난 봄, 쓸쓸한 서울 거리의 먼지들을 가득 머금은 검은 빛깔의 옷을 입은 그가 조심스럽게 딛는 발자국 흔.적.에서 낮고 기인 향기가 부서져, 수증기같이 뿌연 장마비가 내리는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러자 창백한 혀를 내밀려 그에게 당당하게도! 키스를 요구하다 거절.당.한 그녀가 발아간 손을 내밀어 그의 거친 볼을, 그의 울퉁불퉁한 이마를, 그의 흥분한 눈썹을, 아무 말 없는 그의 눈동자를 쓰다듬는 것이었다. 그 때 합정역 사거리, 아주 오래 전부터 지쳐있는 아스팔트를 뚫고 나온 지하철 2호선으로 하얀 빛깔의 건널목 위로 들어왔다. 밤11시. 2호선 합정역 건널목. 그들이 객차 안으로 들어가고 그 곳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맹렬한 소리를 내며 지하철은 당산역을 향해 떠났다. 지하철이 당산역으로 향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