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187

PC 바탕화면을 바꾸다, 조지 시걸

사무실 PC 바탕화면을 바꾸었다. 티치아노의 작품에서 조지 시걸의 82년도 작품, 'Wendy with chin on hand'로 옮겨간다. 조지 시걸. 내가 사랑하는 작가. 작품 활동 초기, 살아있는 사람의 전신을 라이프캐스팅(Life Casting)하던 시기를 지나 일부만 떨어져 나온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런데 떨어져 나온다는 것에 대한 회한이나 그리움, 아쉬움이나 미련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의례 그래야 되는 시기가 왔고 그래서 일부만 떨어져나왔다. 살아있는 사람을 본을 떴다고 해서 라이프캐스팅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실은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살아있어도 죽은 듯이 살아야할 때가 있고 죽었으나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우리 옆에 머물기도 한다. 이 작품을 보고 너무..

살아 있는 누군가 마음 속에서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데미안 허스트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살아있는 누군가 마음 속에서의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뭔가 심오한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글쎄다. 얼마나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을 지는 현대미술 전문가들의 손길에 기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상당히 어려운 단어들로 포장해서 설명할 것이다. 가령 아래와 같이. 1980년대 이후 현대미술은 신체에 대한 폭력성과 자기 분열을 보이는 일종의 '신경증적 리얼리즘neurotic realism'을 나타냈다고 말한다. 허스트의 개념미술은 그러한 증상을 표현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 전영백, , 106쪽 '신체에 대한 폭력성'이 다소 낯설지만, 내가 이해하는 바대로 풀어보자면..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 신시아 프리랜드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신시아 프리랜드(지음), 전승보(옮김), 아트북스, 2002 이 책은 현대 미술, 그리고 현대 미술에 대한 여러 이론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요약하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만한 책이다. 종종 나는 신시아 프리랜드의 입장과는 다른 입장에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녀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다. 이 글은 각 챕터별로 중요한 점만 이야기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더 중요한 이야기도 있을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이 글은 매우 편파적이다. 빌 비올라라는 미디어 아티스트가 있다. 비디오 아트를 이야기할 때, 백남준과 함께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예술가이다. 몇 해 전 국제 화랑에서 전시를 한 바 있는 그의 작품은 맨 마지막 챕터에 있지만, 이 책..

메리 카사트 Mary Cassatt

Mary Cassatt (American, 1844 - 1926). Young Mother Sewing, 1900. Oil on canvas. https://www.metmuseum.org/ 마음이 따뜻해진다. 봄날의 바느질. 아이의 표정에서는 날 왜 보느냐는 듯하면서도 맞은 편에 대한 궁금함이 묻어난다. 창 밖은 푸르고 집 안은 고요하다. 엄마와 아이 뒤에 있는 꽃화병은 흥미로운 오브제다. 저 화병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상당해 보인다. 잠시 저 곳에 나도 앉아있었으면! 메리 카사트Mary Cassat. 미국 출신의 인상주의 예술가. 그리고 대단한 명성을 누렸던 여성 화가(역사상 거의 최초에 가까운). 평생 독신이었으며 에드가 드가가 죽을 때까지 교류했던 이였다. 작업실도 5분 정도 거리였고 둘..

올라퍼 엘리아슨, <세상의 모든 가능성>, 리움

OLAFUR ELIASSON THE PARLIAMENT OF POSSIBILITIES LEEUM, 2016.9.28 - 2017.2.26 올라퍼 엘리아슨, 세상의 모든 가능성, 리움미술관 "I like to believe that the core element of my work lies in the experience of it" 올라퍼 엘리아슨은 다양하고 실험적인 설치작품을 선보인다. 특히 자연에서 영감받은 듯한, 빛을 반사하고 색조로 물결치는 유리, 그리고 인공적인 장치들을 통한 자연 현상들의 재현들로 갤러리, 혹은 미술관 안에서 자연을 느낀다. 2017년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올라퍼 엘리아슨의 전시는 그 해 가장 성공적인 전시였으며, 관람객들에게는 보기 드문 감동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계..

스크린의 추방자들, 히토 슈타이얼

스크린의 추방자들 The Wretched of the Screen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지음), 김실비(옮김), 김지훈(감수), 워크룸프레스 1. 책을 사두고선 읽지 않았다. 현대예술에 대한 책이라는 걸 알았지만, 영화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일 거라는 추정과 다소 투박하게 읽혔던 몇몇 문장들로 인해, 그리고 다른 책들과의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려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읽은 한은형의 수필집에서 히토 슈타이얼이라는 흥미로운 예술가의 이름을 발견한다. (2007)라는 작품에 대한 짧은 글 속에서 나는 이 작가를 찾았다. 그런데 이런, 나는 뒤늦게 최근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미술가들 중의 한 명이며, '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로 거의 전세계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을. 그리고..

뒤샹 딕셔너리, 토마스 기르스트

뒤샹 딕셔너리 토마스 기르스트(지음), 주은정(옮김), 디자인하우스 지난 주 마르셀 뒤샹 전에 대한 리뷰를 올리면서 잠시 참고했던 책이었다. 말 그대로 '뒤샹 사전'이다. 마르셀 뒤샹(또는 현대 미술 이론)에 관심 있는 이들에겐 무척 유용하지만, 그저 현대 미술에 대해 일반적 이해만 가진 이들에겐 다소 쓸모가 떨어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뒤샹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키워드가 등장하지만, 이와 연관된 도판 이미지는 없다는 점은 일반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음을 드러낸다고 할까.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뒤샹에 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새로 알게 되었으니, 사전의 유용성이 없진 않았다. 어쩌면 탁월할 지도 모른다. 뒤샹과 연관된 대부분의 키워드들을 담고 있을 테니, 뒤샹에 대해 알..

마르셀 뒤샹 展,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2018. 12. 22 - 2019. 4. 7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마르셀 뒤샹만큼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작가는 없다(있다고 한다면 세잔 정도). 그는 인상주의 이후 추상을 향해가던 현대미술을 캔버스 바깥을 향한 실험과 개념의 아수라장으로 만든 장본인. 뒤샹 이후 모든 것은, 그것이 사물이든 개념이든 상관없이 예술이 되었고(될 수 있고), 동시에 예술이 아닌(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도 실은 앤디 워홀이 아닌 뒤샹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노년의 뒤샹은 젊은 엔디 워홀을 무척 좋아했다). 레디메이드란 숨겨진 미적 가치의 재발견처럼 보이지만, 실은 '예술작품'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을 표시하는 일종의 태도다..

하룬 파로키 Harun Farocki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하룬 파로키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Harun Parocki - What Ought to Be Done? Work and Life6, 7 전시실 및 미디어랩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2018. 10. 27 - 2019. 4. 7 영화가 예술이라고 한다면, 그건 일부에 해당될 것이다. 왜냐면 대부분의 영화작품들은 현대 예술과는 반대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제외한) 현대 예술의 주된 특징은 관객의 몰입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작품 속에서 작품 자체에 대해 묻거나, 관객의 감상이나 태도에 개입하여 스스로 반성하게 하며,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거나(혹은 소격효과) 도리어 그런 거리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의도된 혼란을 만들어 작품의 개념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현대 영화들은 관객에게 과도한 몰입을 요구하며 관객을 지..

현대 사진과 레디메이드

(김승곤 외 지음, 홍디자인출판부, 2000)에 실린 이경률의 의 일부를 정리하면서 덧붙인 글이다. 나는 예전에 라는 짧은 포스팅을 통해 레디메이드와 오해하기 쉬운, 혹은 그와 동일한 양식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뒤샹은 초현실주의자의 '발견된 오브제'와는 전혀 다르고 말한다. 그러나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초현실주의자들의 ‘발견된 오브제’와는 다르다. 이 차이를 뒤샹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의 레디메이드는 개인 취미의 문제이다. 발견된 오브제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른바 발견된 오브제가 아름다운 것인가 특이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기호인 것이다. 기성품의 선택은 미적인 즐거움에 의한 것은 결코 아니다. 선택은 시각적인 무관심에 기초한 것이다.” 이러한 뒤샹의 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