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철학 10

시간과 타자, 엠마누엘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Le Temps et L'autre 엠마누엘 레비나스(지음), 강영안(옮김), 문예출판사 1996년에 번역, 출간된 책이고 나는 1997년에 구했다. 그 이후로 몇 번 읽으려고 했으나, 첫 문장을 넘어서지 못했다. 외롭다는 생각, 혹은 그런 경험 속에서 타자와의 관계를 무서워했던 걸까. 시간은 주체가 홀로 외롭게 경험하는 사실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자체임을 우리는 이 강의를 통해 보여 주고자 한다. (29쪽)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관계를 살펴보며 자아(데카르트적 주체)에 대한 탐구를 해나간다. 유행하는 철학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듯하면서도 현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학자이다. 결국 하이데거에 있어서 타자는 서로 함께 있음(Miteinandersein)의 본질적인 상황 속에서 나타난..

촘스키, 끝없는 도전, 로버트 바스키

촘스키, 끝없는 도전로버트 바스키(지음), 장영준(옮김), 그린비 노엄 촘스키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지만, 그의 언어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할 것이다. 대체로 우리에게 촘스키는 하워드 진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진보적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아마 그의 언어학 이론은 영문학과나 언어학과 학부나 대학원 과정에서나 다루어질 것이니, 일반 독자가 노엄 촘스키의 학문 세계를 알고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사정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이 책을 읽게 된 외부의 계기가 있었으나, 나 또한 노엄 촘스키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많은 이들이 대단한 언어학자라고 추켜 세웠지만, 정작 그들도 촘스키의 언어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왜 추켜세우는 것인가!..

데리다Derrida: 데리다 철학의 개론적 이해, H.키멜레

데리다: 데리다 철학의 개론적 이해 Jacques Derrida zur EinführungH. 키멜레(Heinz Kimmerle) 지음, 박상선 옮김, 서광사, 1996 데리다에 대해선 대학 시절부터 많은 논문과 책을 읽었지만, 늘 모호하기만 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었지만, 결론은 같다. 그의 방법론 - 미국에선 흔히 '해체'라고 부르는 - 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늘 남는다. 물론 "차연의 철학"이라는 명칭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명칭은 - 아도르노에 의해 발전된 동일화하는 사유(identifizierendes Denken)에 대한 비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차연[다름성]을 생각한다는 것은 동일화시키지 않음, 즉 다른 것 혹은..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선생님께서 강의를 위해 손수 적으신 노트를 보내주셨다. 이에 비트겐슈타인의 한글번역본을 주문하고 영어 번역을 구했다. 학부 시절, 강의 시간에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철학자에 들은 바 없다는 건 죄악이다. 아무리 문학 전공이라고 해도. 학생들에게 미래가 없는 건 그 학생들의 선생들에게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지적(知的) 자극을 제대로 받지 못했음은 종종 내가 대학 잘못 선택해 갔나 하는 생각이 든다(하긴 다른 대학엘 갔어도 마찬가지였을 듯).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을 읽으면, 꽤 우울해지겠구나. 하지만 우울(melancholy)이란, 천재들의 기질임을!! 아래에선 비트겐슈타인의 를 독일어 원문 - 영어 번역(the Ogden (or Ogden/Ramsey) transl..

구토 La Nausee, 장 폴 사르트르

구토 - 장 폴 사르트르 지음, 방곤 옮김/문예출판사 구토 La Nause'e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이휘영(옮김), 삼성출판사, 1982년(현재 구할 수 있는 번역본으로는 문예출판사 번역본이 좋을 듯싶다.) 그냥 우연히 책을 집어 들었다. 이휘영 교수의 번역으로 수십 년 전 출판된 세계문학전집의 한 권이다. 헌책방에서 외국 문학들만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적이 있었고, 그 때 사두었던 낡은 책이다. 요즘에도 좋은 소설들이 번역되지만, 과거에도 그랬다. 단지 요즘 사람들의 관심이 없을 뿐. 그래서 과거에 번역되었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소설들도 꽤 존재한다. 장 폴 사르트르다! 그는 20세기 최대의 프랑스 철학자들 중의 한 명이다. 실은 앙리 베르그송이 아니었다면, 그는 최고가 되..

어느 일요일의 단상, 혹은 책읽기의 사소한 위안

책을 집중해 읽을 시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줄어들기만 한다. 이제서야 책 읽는 재미, 문맥 속에서 세상의 비밀을 엿보는 기쁨을 알게 되는 듯 한데 ... 얼마 전 펼친 한스 블루멘베르크(Hans Blumenberg)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들'(Wirklichkeiten in denen wir leben, 양태종 옮김, 고려대출판부)의 한 구절은 올해 읽었던 어느 문장들 보다 마음에 와 닿았다. "우리가 하나 이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은 20세기 철학을 자극하는 발견들을 위한 정식이다. 그것은 우리와 맞닥뜨리는 횟수가 늘어나는 발견들을 위한 정식이다." - 한스 블루멘베르크 하나 이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20세기의 생각들은 시작되었을 지 모르겠다. 블루멘베르크의 표현대로... 하지..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 한나 아렌트 지음/한길사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지음), 한길사 한나 아렌트에 대해서는 잡지의 칼럼이나 신문 기사에서 종종 접하곤 한다. 하지만 그녀의 책은? 솔직히 말해 일반 독자에게 이 책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아주 느리게, 아주 천천히 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나 아렌트. 젊은 시절 하이데거의 연인이었으며, 미국으로 넘어간 유태인, 여성 철학자,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하면서 학문적 주목보다는 센세이션과 거부감을 더 불러일으킨 학자.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 아렌트가 여성이 아니었다면 그녀의 학문적, 지적 명성은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들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책을 통해 근대적 인간의 오래된 소외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전체주의'가 가지는 비극성, 그것이 어떻..

헤르메스적 세계, 혹은 새로운 철학적 신화학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 (현실에 관한 사유의 전환: 철학적 헤르메틱) H. 롬바흐 지음, 전동진 옮김, 서광사 이미 품절된 책, 그리고 헌책방에서조차 구하기 어려울 책이 된 롬바흐의 ‘아폴론적 세계와 헤르메스적 세계’는 마치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아폴론 – 디오니소스) 아래에서 아폴론과 헤르메스를 대비시키며 현대적 신화학, 혹은 신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을 시도한다. 하지만 많은 현대철학자들에 의해 철학은 이미 미학화되었고 이 책도 그 지평을 따라 서사(신화)와 미적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책들 중의 한 권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서양의 지적이며 미적이고 신화적인 세계들의 여러 사례들을 끄집어 내어 자신의 사유를 설명해 가는 롬바흐의 서술은 이 책을 읽는 예상치 못한 즐..

호모 사케르, 조르조 아감벤

호모 사케르 -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진우 옮김/새물결 호모 사케르 -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지음), 박진우(옮김), 새물결 이 책 전체의 핵심 주제는 바로 정치의 근본 범주를 ‘주권/벌거벗은 생명’의 관계로 새롭게 파악하는 것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를 “서양 정치의 근본적인 대당 범주는 동지-적이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정치적 존재, 조에-비오스, 배제-포함이라는 범주쌍이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렇다면 ‘주권’과 ‘벌거벗은 생명’이 과연 어떤 존재론적 층위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근대 정치의 핵심 범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해명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근본 주제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23쪽, 옮긴이 서문 옮긴이의 서문을 옮기지만, 이 책은 초심..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송영진(편역)

베르그송의 생명과 정신의 형이상학 - 앙리 베르그송 지음, 송영진 옮겨엮음/서광사 이 책은 질 들뢰즈(Giles Deleuze)가 "베르그송주의"(PUF,1968년)을 내고 8년이 지난 후에, 베르그송의 저작들 중에서 선별한 원문들로 구성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한 권으로 베르그송의 사상 전반에 대해서 일괄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 이미 국내에는 베르그송의 저작들이 많이 번역 소개되어 있다. 특히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창조적 진화"도 번역되어 있으니, 베르그송에 대한 척박한 환경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베르그송의 여러 저작들을 읽기 전에, 혹은 읽은 후에, 이 책은 요긴한 선집이 될 수 있겠다. 그만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베르그송의 철학 세계를 쉽게 이해하기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