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일요일 아침의 피그말리온

지하련 2009. 4. 5. 11:44




오전 7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신문을 잠시 보다가, 9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서 근처 분식집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실은 오후 늦게 약속이 있는데, 과연 내 몸 상태가 그 약속을 소화시킬 정도인가 테스트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걷는 모습은 꾸부정하고 움직일 때마다 적당한 수준의 통증을 느꼈다. 결국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기 곤란한 상황이라, 나중에 전화를 다시 하기로 했는데, 아직까지 전화가 없다.

집에 들어와, 장 필립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 - 1764)의 '피그말리온 Pygmalion'을 들었다. 감미롭고도 슬픈 선율을 날 잠시 위로했다.

쓸쓸함이라든가 외로움이라든가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아플 땐 특히 더 그렇다.

원래는 운동을 하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는데, 도리어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약국에 갔더니, 이상한 진통제들만 잔뜩 준다. 하루 이틀 먹어보고, 그래도 계속 아프면 병원 가라고 한다. 어제 운동을 하러 갔다가 샤워를 하기 전 거울을 보니, 얼마나 아팠던 건지 상체가 갸우뚱해져 있음을 발견하고 놀랬다. 옷을 입은 상태에선 보이지 않던 것이 옷을 벗고 나니, 내가 예상하던 것보다 내 육체는 그 통증에 매우 김각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로, 자신이 만든 여인상과 사랑에 빠진다. 이렇고 저렇고 해서, 여인상이 실제 여인으로 변해 피그말리온 옆으로 온다는 기이한 이야기의 주인공인데, 이 로맨틴한 스토리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보게 되는 작품의 갈라테(Galatea, 피그말리온이 사랑에 빠진 여인상의 이름)은 대부분 아름답다. 그런데 아래 작품은?

  

브론지노(Angelo Bronzino)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은 너무 흥미롭다. 1529년에서 153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 속에서, 두 인물은 마치 자신들이 그림 속에 위치한 가상의 인물임을 아는 듯, 다소 작위적이고 가식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색채도 공중에 붕 뜬 듯, 단단한 느낌을 주지 못하고, 그렇다고 환영적이라든가 자연주의적이지도 않다. 마치 결과를 알 수 없는 슬픈 꿈처럼, 그렇게 표현되고 있다.

요즘 우리 시대도 이런 모습은 아닐까. 아니면 내 모습은? 하지만 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작곡가였던 라모의 음악은 충분한 위로가 될 수 있으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