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Star Wars - Episode II, UNC갤러리

지하련 2009. 6. 8. 21:39


Star Wars - Episode II

- The Phantom Menace -
UNC갤러리, 2009.2.12 - 3.12


눈이 환해지는 전시가 있다. 그런 전시를 만나면, 그 전시 기획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을 유심히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전시를 만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늦은 겨울, 오랜만에 들른 사간동 UNC 갤러리에서 나는 그런 전시를 만났다. 

건조한 늦겨울 바람이 불었고 피부는 딱딱해지고 눈은 침침해지는 2월 중순, 바쁜 일상 속에 전시를 보기 위해 시간을 내는 건 꽤 큰 투자다. 늘 누군가와 함께 전시를 보러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지만, 나를 따라 나서는 전시 관람이란, 그 누군가에게도 꽤 큰 고역이 될 것임에.

늦은 오전, 안국역에서 내려 정독도서관 가는 길에 일렬로 늘어선 갤러리들을 다 둘러본 후, 사간동의 다른 갤러리들을 거의 다 지나쳐 대체로 마지막으로 가는 곳이 UNC 갤러리다. 이 정도 되면, 이미 몇 시간이 지난 후이다. 아마 이 여행에 누군가와 동행했다면, 그 다음부터 나와 미술 전시 따윈 보러갈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을 게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몇 시간 동안 전시를 보았을 때, 우리는 도시의 빛깔이, 계절의 색채가,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표정이, 거리를 지나치는 자동차의 형태와 속도를 전혀 다르게 인식하게 될 것이리라.

'스타워즈 - 에피소드' 전은 UNC 갤러리의 연례 기획전이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정하게 년초에 전시를 한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가들은 김진, 이림, 이승민, 이재훈, 디황 등의 다섯 명이다. 전시 제목은 전시 내용과 관련이 있다기 보다는 전시의 전체적인 방향, 즉 젊은 작가들이 미술계의, 혹은 우리들의 스타(Star)가 되기 바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의 눈을 먼저 사로잡았던 작품은 김진의 작품이었다.

김진, Untitled0824, 캔버스에 유채, 165×165cm, 2008

김진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마치 색채의 밀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위의 작은 이미지로는 실제 작품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다). 책들로 둘러싸인 공간 위로 살아있는 덩쿨들이 여기저기 무정형의 운동으로 가득 메우고 있는 모습은 그 공간의 보이지 않는 긴장감, 혹은 그 공간의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듯 느껴진다. 마치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우리 머리 속을 가득 채우는 무수한 생각들의 갈래를 밀림의 덩쿨처럼 표현했다고 할까.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작가의 색채에 대한 감각이다. 김진은 자극적인 색채들을 부드럽고 체계적으로 한 공간 속에 융합시키고 있다. 도리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작품 속 공간을 한 없이 낯설고 이국적인 공간처럼 인식되게 만든다.


이림, The mess of emotion no.3, 캔버스에 유채, 160×160cm, 2008


흰 색과 검정 색이 마치 면도용 크림처럼 온 몸을 휘감고 있다. 마치 꼭꼭 숨기고 있던 감정들이 물밀듯 밀려와 결국엔 피부를 뚫고 나와 감싸는 것처럼. 실은 딱딱하게 굳어져 가는 슬픔일 게다. 뒤죽박죽이 되어있긴 하지만, 이젠 견딜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지난 후이고, 이제서야 겨우 눈을 감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큰 캔버스 가득 채우고 있는 한 인물의 낯선 형태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품을까. 이림의 작품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당혹스러움을 심어놓는다. 마치 사랑하는 이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했을 때, 고백을 조용히 듣고 있던 그녀, 혹은 그가 '당신은 절 사랑하지 않아요 . 당신은 당신의 나를 좋아할 뿐, 저를 사랑하는 건 아니랍니다'라고 말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이랄까.

하긴 당혹스러움이라는 감정은 비단, 사랑 고백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The mess of emotion이라는 작품 제목에 계속 시선이 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흰 색과 검정 색으로 뒤죽박죽되어 조용히 분출되고 온 몸을 휘감아 도는 감정이란 어떤 것일까. 아마 슬픔이겠지 라고 추측하지만, 내 마음 속의 어떤, 슬픈 당혹스러움은 아닐까.


이승민, 적극가담자-방관자, 캔버스에 유채, 91×116.7cm, 2009

이승민, 적극가담자-방관자, 캔버스에 유채, 91×116.7cm, 2009

초점을 잃어버린 눈으로 어딘가 바라는 낯선 형태의 인물. 부옇고 흐린 파스텔 톤의 유화. 마치 어느 애니메이션에 등장할 법한 인물. 어쩌면 먼 미래의 얼굴. 결국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어느 미래의 디스토피아?

이승민의 작품은 20세기 후반의 대중 문화의 영향을 받은 듯한 낯선 인물들을 그렸지만, 우리는 마치 보여지기는 마치 20세기 초반의 초현실주의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느낌은 우리 문명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어떤 세상의 정치학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인물은 어딘가 모르게 일그러져 있으며, 무표정하고, 마치 얼마 전까지 풍부한 감성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어떤 이가 갑자기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탈색되어 나타난 듯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재훈, Unmonument-이것은 무엇입니까, 프레스코, 190×102cm, 2008


프레스코화라는 낯선, 하지만 오래된 기법으로 제작하는 이재훈의 작품은 익명성으로 굳어져가는 우리들의 일상을 알레고리로 풀어낸다. 기념물이 되어버린 채, 낡은 기법으로 굳어버린 우리들의 일상.

표현스타일은 현대적이고 기묘하지만, 이와 대비되어 나타나는 표현기법 사이의 거리만큼, 이재훈의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디황, u1, 캔버스에 유채, 유리, 스틸, 118×92cm, 2009

디황, u2, 캔버스에 유채, 유리, 스틸, 118×92cm, 2009


디황의 작품은 실제로 보아야만 한다. 유채로 그려졌지만, 실제 작품 앞에서 마주하게 되는 것은 유리와 스틸이 보여주는 육중함이다. 그리고 스틸 위에 거칠게 그려진 유채의 느낌. 마치 거칠게 우리 내면을 긁어내는 듯한 터치. 괴기스럽고 무섭다는 느낌마저 주는 작품.

전시를 본 지도 몇 달이 지난 후에 리뷰를 올리는 것이 다소 터무니 없고,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겐 꽤 불성실한 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다섯 명의 젊은 작가들은 한 번쯤 기억해두면 좋으리라. 아마 눈 밝은 이들에겐 이미 알려진 젊은 작가들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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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이미지의 출처는 neolook.com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