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노년의 즐거움, 김열규

지하련 2009. 8. 14. 09:06

노년의 즐거움 - 6점
김열규 지음/비아북



'한국학의 석학이자 지식의 거장인 김열규 교수!', '한국의 키케로' 김열규 교수의 노당익장老當益壯 분투기! 

하지만 책 표지에 있는 이 수사에 비해, 책의 내용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더구나 군데군데 잘못된 정보도 있었다. 가령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자화상이라고 알려진 스케치가 실제 다 빈치의 자화상이 아니라는 사실은 미술사에 식견이 있는 이에게만 알려진 사실이라고 치자. 하지만 자끄 플레베르의 '아침식사'를 일부만 옮겨놓고 이렇게 적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이 지루하고 답답하면서도 얄궂은 시는 프랑스의 현대 시인 자크 프레베르의 작품이다. 이는 빈 커피잔과 함께 남겨진 아내가 투덜대는 것이지, 시가 아니다. 잘해야 구시렁댐이고 잘못하면 이혼 사유서 같은 것이다. 할 짓, 할 말은 하지도 않고 안 해도 좋을 시시한 일만 골라서 한다는 것, 그게 이 작품의 대의이다.
샹송 '고엽'으로 유명한 프레베르, 초현실주의를 내건 이 별난 시인에게는 일상성이야말로 포에지, 즉 시정신의 탯불 같은 것이다. 초현실을 내건 시인이 이런 시시한 일상을 노래하다니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194쪽 ~ 195쪽


그는 이 시의 제목도 밝히지 않고, 시의 전문이 아닌 일부만을 인용한 채, 이 시를 한참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사랑과 이별에 대한 담백한 연시로 유명한 자끄 플레베르의 시를, 문학을 전공하고 가르친 교수가 잘못 알고 있다는 건 의외의 일이다. 

(자끄 플레베르, '아침식사' 원문 - http://blog.daum.net/skdmlgkfnek/7233266 )

전체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수필집이지만 기대할 필요까진 없을 것이다. 책을 공짜로 받고 이런 서평을 쓴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책은 저자의 경력에 비해, 함량 미달이었으며, 자신의 노년 생활을 자랑하기 위해 쓴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과연 한국의 노인들 중에 저자와 같은 삶을 사는 이가 몇이나 될까. 책을 읽으면서 머리에선 출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마주치는 김밥이나 찬거리를 파는 노인들의 얼굴이 떠나질 않았다. 이 책을 읽은 독자가 얻는 것이라곤, 김열규 교수만의 일상일 뿐, 우리 시대 노인들의 일상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