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어느 목요일 밤...

지하련 2009. 10. 23. 00:20

목요일 저녁 7시, 도시의 가을, 차가운 바람 사이로 익숙한 어둠이 밀려들었다. 그 어둠 사이로 보이지도 않는 자그마한 동굴을 파고 숨어 들어간 내 마음을 찾을 길 없어, 잠시 거리를 걸었다. 삼성동에서 논현동까지.

마음이 지치기도 전에 육체가 먼저 지쳐버리는 10월의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나이 탓이라고 변명해보지만, 그러기엔 난 아직 너무 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너무 어린 마음이 늙은 육체를 가졌을 때의 그 비릿한 인생의 냄새를 가지고 있다. 그 냄새를 숨기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어떻게 된 일인지, 어린 마음이 지치기도 전에 육체가 먼저 지쳐버렸다. 이 세상이 익숙해진 육체에겐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요 며칠 하늘은 정말 푸르고 높았지만, 그건 고개 돌린 외면의 색의 높이였다. 집에 들어와 오랜만에 김치찌게를 했다. 다진 마늘, 올리브유에 김치, 참치캔와 햄 몇 조각. 배가 고팠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거대한 기업에서 수천명의 이름으로 만든 햇반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말 불행한 일이지만, 내가 김치찌게를 제법 끓인 탓일까. 허겁지겁 숟가락을 들고 움직이면서, 15년이 넘은 대우 TV 속에서 아나운서들이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하듯 국내 뉴스를 전하는 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어차피 그들은 나를 향해 하는 소리가 아니었고, 내가 TV 속 그들을 본다고 해서 그들이 나에게 관심을 표명한다거나, 내일 전화를 한다거나, 커피나 술을 사줄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19세기의 예술가들이 열광했던, 그 모더니티의 익명성은 이제 우리의 일상 모두를 지배하는 감옥이 되었지만, 그 누구 하나 나서서 모더니티가 감옥을 찬양했으며, 감옥을 낯선 것이며 열광했다는 일을 지금도 좋아하는 걸 보면 정말 웃긴 일이다. 내가 알기로 오직 막스 베버만이 그것을 새장이라고 표현했다.) 

새로 산 운동화를, 버리려고 내놓은 수 백 권의 책 옆에 밀어두고 벨앤세바스티안을 들었다. 미친 짓이다. 요즘 잘 듣지도 않는 팝 음악에 빠져있다는 건 권장할 만한 짓은 아니다. 연말엔 클래식 공연을 몇 개 챙겨서 볼 요량이었으나, 혼자 가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브람스 전집을 사려고 인터넷 서점 소망리스트에 올려놓았으나, 결정적으로 들을 시간이 없다. 프레드릭 제임슨의 '후기마르크스주의'(한길 그레이트북스)를 읽고 있다. 아마 이 책이 재미있다고 하면 욕 먹겠지. 보편과 특수, 개념과 총체성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마르크스나 엥겔스, 혹은 루카치가 아니라,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와 오캄을 떠올린다고 하면 돌았다고 하겠지. 

오늘 점심 시간, 점심 대신 압구정 트리니티 빌딩 지하 2층, 3층에 자리잡은 PKM Trinity Gallery에 가서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전시를 보았다. 몇 년 전 웹 기사를 통해 그의 The Weather Report를 보면서 경험해보고 있었는데, 막상 서울 전시는 그의 스케일을 느끼기엔 다소 약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퇴근 후, 올라퍼 엘리아슨의 기사 몇 개를 찾고 이미지와 동영상을 찾다고 보니, 금세 열 한 시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 열 두 시가 넘었다. 

글쓰기도 잘 안 되고, 책읽기도 잘 안 되고, 연애도 잘 안 되는 느낌이다. 결국 내 어린 마음은 믿을 수가 없고, 내 늙은 육체는 이 가을, 너무 쉽게 지치기만 한다. 터무니없는 가을을 용케 잘 버티고 있는 중이다. 술을 조금 줄이든지, 아니면 도어스의 '인디안 섬머'를 들으면서 병맥주를 조만간 마셔야 겠다. 이번 가을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중이라며 나에게 스스로 술 한 잔 권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