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지하련 2003. 7. 9. 13:18
폐허의 도시 - 8점
폴 오스터 지음, 윤희기 옮김/열린책들


폐허의 도시
폴 오스터, 열린 책들




이야기는 안나 블룸이라는 여자가 그 도시로 오빠를 찾아들어가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 도시는 정말 ‘폐허’였다. 그 풍경은 먼 미래, 무시무시한 핵전쟁 이후 무정부상태를 묘사하곤 하는 SF 영화들과 닮아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한 개인(안나 블룸)에게만 그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녀의 실존적 환경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SF 장르 영화의 서사구조와는 틀리다.

그렇다고해서 장르 영화와 얼마나 틀릴 수 있을까. 끝까지 달성 가능한 희망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1) 소설은 안나 블룸이라는 여자가 그 도시에 들어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그 도시를 빠져나갈 계획을 세우는, 어느 겨울에서 끝난다. 소설의 시작은 그녀가 오빠를 찾겠다는 희망에서 시작하였고 소설의 끝은 오빠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이 도시를 빠져나가리라는 희망으로 끝난다. 그러니 거칠게 말하면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작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폴 오스터는 인간이 얼마나 희망적인가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듯하며 이와 비슷하게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부족한 듯하다. 실제 이런 도시가 존재한다면, 아마 그 도시 정부에 참여하고 있는 몇 명은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거나 몇 개의 레지스탕스 조직들이 활동하며 도시의 여기저기에서 총소리가 들릴 법도 하다. 동시에 인간을 거래하는 조직이나 겨울이면 인간을 먹는 풍경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적당하게 비극적이고 적당하게 슬프고 적당하게 희망적이다.

폴 오스터의 여러 소설들을 읽었지만, 이 소설은 폴 오스터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 소설에서 폴 오스터의 문장이나 태도와 소설의 서사가 서로 충돌한다. 다분히 팝(pop)적이다. 읽고 나면 안나 블룸 일행이 그 도시를 나갔을까 생각을 하게 되지만, 그것은 작가의 어설픈 결말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폴 오스터가 묘사하는 폐허의 도시는 너무 어정쩡하다. 안나 블룸이 여러 사람을 만나는 과정도 엉성하고 묘사는 사실성이 떨어지며 에피소드들은 너무 가식적이다.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마 소설을 많이 읽는 독자들이 잘못된 소설을 배울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얼핏 보면 재미있고 잘된 소설처럼 보이니 말이다.



1)안나 블룸이 지나온 일들을 돌이켜보자면, 그녀는 매우 운이 좋다. 즉 소설이 끝나고 소설 이후에 전개되었을 그녀의 삶도 그러할 것이라 독자는 생각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폴 오스터답지 않은 해피앤딩인 셈이다.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