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호모 사케르, 조르조 아감벤

지하련 2009. 11. 8. 12:58
호모 사케르 - 8점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진우 옮김/새물결


호모 사케르 -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지음), 박진우(옮김), 새물결

 

이 책 전체의 핵심 주제는 바로 정치의 근본 범주를 ‘주권/벌거벗은 생명’의 관계로 새롭게 파악하는 것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를 “서양 정치의 근본적인 대당 범주는 동지-적이 아니라 벌거벗은 생명-정치적 존재, 조에-비오스, 배제-포함이라는 범주쌍이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렇다면 ‘주권’과 ‘벌거벗은 생명’이 과연 어떤 존재론적 층위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근대 정치의 핵심 범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해명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근본 주제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23쪽, 옮긴이 서문



옮긴이의 서문을 옮기지만, 이 책은 초심자가 읽기에는 매우 어려운 책이다. 현대적 지평 속에서 ‘주권’을 새롭게 해석하고 재창조하고 있는 이 책의 주제는 일반적인 독자가 소화시키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한다. 이 책에서의 아감벤의 의도는 ‘주권’이라는 것이 과연 실체화할 수 있는 것인지, 법에서 정의하는 ‘주권’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인지, 또한 국가의 국민에게 주어져 있는 ‘주권’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지 역사적으로, 철학적으로 파고 들어가 허울 뿐인 주권에 새로운 정의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벌거벗은 생명이다. 즉 살해는 가능하되 희생물로는 바칠 수는 없는 생명vita uccidibile e insacrificabile 즉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생명으로서, 우리는 그것이 현대 정치에서 어떻게 본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인간의 생명이 오직 자신을 배제하는 형태로만 그러니까 면책 살인의 가능성을 통해서만 법질서ordnung 속에 포함될 수 있었던 고대 로마법의 모호한 형상은, 주권에 관한 신성한 텍스트들뿐만 아니라 더 넓게는 정치권력의 약호들 자체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해준다.
- 45쪽~46쪽



하지만 일반독자가 이 책을 읽는다는 건 무모한 도전일 가능성이 높다. 꼼꼼한 독서와 노트가 요구되는 책이며, (정치)철학, 또는 정치학 전공자에게 매력적일 수 있으나, 그 외 분야의 독자에게는 추천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비난을 각오해야 할 종류의 일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임에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