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어느 일요일의 닫힌 마음

지하련 2010. 4. 18. 23:31



일요일의 평온함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내 마음의 무너짐은 거침없이, 일상을 불규칙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고, 자주 불투명한 인식과 판단, 혼란과 착오, 표현력의 빈곤과 부딪히게 만들었다.

생각이 사라지는 법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 존재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데카르트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 삶이 한 번도 명증한 확실성 위에 있었던 적이 없었고 그저 그렇다고 여겼을(인식했을) 뿐이고, 데카르트도 그랬을 뿐이다.


플라톤의 번역서 한 권을 사러 나갔다. 광화문으로. 근처 흥국생명 빌딩으로 향했다. 망치질 하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적인 설치 미술이자 공공미술(public art)이다. 이 작품이 설치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유명세를 치를 만 하지만, 일반 대중의 관심사는 아닌 듯해, 우연히 마주치는 느낌은 늘 쓸쓸함과 애잔함이다. (상황이 이러니, 순수미술은 얼마나 대중과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확인할 뿐이다.)

흥국생명 빌딩 3층으로 향했다. 1층에는 현란한 색채의 현대 미술 작품들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지나, 2층부터 3층까지는 유리 계단이다. 계단 아래로 1층 바닥이 옆으로, 옆으로는 한 눈에 역사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 계단이 매우 못마땅하다.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심한 현기증을 느끼게 하는 이 유리 계단으로 올라가길 포기하지 않는다.

3층 갤러리에는 한국미술, 근대에서 길 찾기 추사에서 박수근까지라는 이름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일요일 오후의 한산함 사이로 갤러리에는 제법 사람이 있었다. 익히 보아오던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컬렉션은 좋았고 마음이 놓였다. 한국 근현대미술은 단절되지 않으려는 우여곡절로 이루어져 있다. ‘추사에서 박수근까지라는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묵의 전통에서 한국 현대 추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보이지 않는 정신의 형태이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환기의 작품이 있었고 장욱진, 권옥연도 보였다. 파란 빛깔의 보기 드문 이대원 작품도 보였다. 대원군 이하응의 작품은 언제나 보기 좋은데, 그가 쇄국 정책을 펼쳤다는 점은 그의 문화적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플라톤의 메넥세노스를 읽었다. 집에 들어와, 청소를 하고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알랭 레네를 만났다. 누보 로망과 분절된 언어. ‘내 사랑 히로시마

사랑이 낯설어지기 전에 사랑을 해야 할 텐데, 일상은 고단하고 마음은 닫힌 채 열리는 법이 없다. 2010년의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