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수보드 굽타 Subodh Gupta 展, 아라리오 갤러리

지하련 2011. 3. 14. 00:41



수보드 굽타 Subodh Gupta
Seoul. 1 Sept - 10 Oct, 2010
Arario Gallery








현대 미술에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을까? 아직까지 우리들은 서구에서 인정받아야만 대단해지는 걸까? 그럴 지도 모르겠다. 수보드 굽타의 작품 앞에서 한동안 망연자실해 있었다. 니콜라 부리오의 지적처럼, 그의 작품들은 '문화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개념적인 함정'일지도 모른다.
 

이 철제 오브제는 당신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는 소재이자 하나의 전환점이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 이 오브제가 갖는 의미는 서구 세계에서 본 관점과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의미를 지니기도 했죠. 인도에서 이 오브제는 일상 생활의 일부로서 대중 문화를 상징합니다. 반면 ‘서구’라는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서는 그 번쩍거림이 사치스러운 세계를 연상하게 합니다(크롬 소재와 번쩍이는 표면을 통해 욕망과 소비의 세계를 확대해서 보여주는 제프 쿤스의 조각 작품처럼 말이죠.). 말하자면, 당신의 작품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소재 자체가 문화적인 차이를 드러내는 개념적인 함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구에서 풍요의 상징으로 여기는 물품이 인도에서는 일종의 불안정함에 대한 어휘(Lexicon)가 됩니다. 즉 당신의 작품은 물질의 공급이 넉넉한 지역으로부터 부족한 지역으로의 이동을 매개하는 교역자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니콜라 부리오, '수보드 굽타에게 보내는 편지' http://www.artinculture.kr/content/view/704/28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개념적인 함정을 깨닫기 전에 우리는 현대적인 낯설음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굽타의 작품들은 매우 현대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지만, 그 대화는 동아시아적이지도, 서구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서구 미술계에서 인정받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을까 라며 도리어 우리 스스로에게 자문하게 된다.


Subodh Gupta, Bullet, 2007, life-sized Royal Enfield Bullet: brass, chrome ~110 x 225 x 75 cm. Collection of the Artist.
http://imcradiodotnet.wordpress.com/2009/08/



그의 작품들은 인도의 일상에서 시작된다. 일상적 경험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다듬어 작품을 풀어내는 그의 스타일은 인도라는 세계의 로컬리티를 확연히 드러낸다. 한국의 미술, 예술계 뿐만 아니라 대중들도 동남아시아를 향해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굽타의 로컬리티는 매우 낯설고 이국적이면서 동시에 우리들의 편견 속에서 높게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거기(인도적 로컬리티)에서 멈추지 않고 세계적인 무대로 나아간다.

“그는 환원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현대 인도에서 사용되는 상징과 형태들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를 형식주의와 효과적으로 결합한다. 지방에서 도시로의 이주 현상, 급격히 진행되는 세계화,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과의 대면 등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이다. 굽타가 조각가로서 활용하는 소재들은 늘 전략적이며, 개념적인 문맥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 아라리오 갤러리의 작가 소개 글 중에서 인용함.



UFO, by Subodh Gupta. Saatchi Gallery, London



그의 작품이 인정받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그는 인도적 세계를 넘어서 문화적 배경이 다른 이들과 만나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의 작품을 하고 있다. 그는 인도의 현재가 처한 문제를 인도의 일상적 오브제로 담아낸다. 그러면서 그의 일관된 주제는 흩어지지 않고 현대화 속의 삶과 죽음을 끊임없이 되새긴다. 그래서 인도 미술 속에서는 정치적 색채를 띄면서 서구 미술 속에서는 모더니티적 탐구를 드러내게 되는 셈이다.


Subodh Gupta
Untitled (Pot)
2004, Oil on canvas
168 x 229 cm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이 젋은 인도 작가의 작품은 여러 모로 많은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수보드 굽타는 인도의 문화적 요소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었다. 몇몇 한국 작가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지 않았을까. 그리고 나는 도리어 서구의 미술 관계자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되었다. 그들은 이국적이고 낯선 타자성을 편견없이 받아들이면서 아직까지 현대 미술의 주류는 서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주지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작품 이미지는 전시 소개와 인용의 목적 이외는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위 이미지들 대부분은 인터넷으로 구한 것이며,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전시된 작품을 인용되지 않았습니다(이미지를 구하지 못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