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걸어가면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리가 듣고 싶었다.

지하련 2011. 3. 16. 11:45



대출 기한을 넘긴 책을 도서관에 반납했다. 반납하는 내 손에서 먼지 냄새가 났다. 발바닥에 굳은 살이 일어났다. 마치 지구 밑바닥을 흐른다는, 내가 태어나서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한 용암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표하듯, 2011년의 봄이 오는 속도로 굳은 살들이 허옇게 올라왔다. 나는 무인 대출반납기에 서서 책 한 권을 반납했다.

여러 차례 버스를 갈아타고 여러 차례 햇살이 비치는 곳과 그늘 진 곳을 번갈아가며 낡고 오래된 갈색 구두 굽이 보도블럭에 닿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다. 구두굽은 보도블럭을 사랑하는가 보다. 그 소리가 그렇게 상쾌하게 들릴 수가.



회사 일 때문에 요 며칠 한남동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오늘은 이태원에서 내려 한남동으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 커피 몇 잔을 사 들고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리가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일본에 사는 지인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고 다행히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에 안심했다. 위기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던 면을 보게 만든다. 쓰나미가 밀려드는 와중에도 연신 고지대로 대피하라는 방송을 외치다가 사라진 스물여섯의 동사무소 여직원. 다른 자동차들이 다 출발하고 나서야 출발하다가 물살에 휩쓸려 간 소방차. 그리고 그것을 방송하고 난 뒤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뉴스를 진행하던 심야의 한국 여성 앵커.




나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리가 왜 듣고 싶었을까.

위기는 이름 없는 사람들을 강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위대하게 한다.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고 원자력발전소는 계속 위험한 상태이지만, 그 사이 일본인들은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나는 그들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