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리뷰

재능있는 감독의 흥미로운 악취미 - 블랙 스완 Black Swan

지하련 2011. 5. 5. 22:09




블랙스완 Black Swan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
나탈리 포트만, 벵상 카셀, 밀라 쿠니스
2011년, 미국



한 편의 잔인한 심리극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닮았다기 보다는 차이코프스키를 닮았다. 비밀스러운 동성애자이면서 평생 우울증에 시달렸던 차이코프스키를 닮아 있었다.

이 영화는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 역할을 한 발레리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아름답지 않고 도리어 처절하고 안타깝고 슬프기만 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의 의도적인 악취미를 보는 것 같아 편하지 못했다.

내 속에 있는 나와 너, 밝음과 어둠, 흰 색과 검정 색, 태양과 달, … 이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한 이분법은 우리 영혼 속에서부터 이미 각인되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외부의 이분법으로 우리의 마음마저도 갈등하는 나와 너로 조각난 것일까.

극(drama)는 원래 제1배우와 제2배우와의 갈등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블랙 스완에서는 니나와 니나의 싸움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사이를 여러 명의 다른 인물들이 스치고 지나간다. 현실과 환상은 서로 뒤섞이고 결국에는 어느 것도 현실이 아닌 영화 속에서 모든 이야기를 흘러간다.

결국 나의 이야기가 아닌 영화 속이므로, 관객은 영화에 빠지고 격찬을 아끼지 않으며 나탈리 포트만을 추켜세운다.

그래서 나는 ‘감독의 의도적인 악취미’라고 한 것이다. 이 기분 나쁜 영화는 예술 창작의 과정을 과장된 심리적 갈등의 드라마로 각색하고, 우아함을 이기적인 욕망으로, 사랑에의 각성을 자위와 섹스로 몰아가며, 역할에의 몰입을 자신을 버리고 다른 자아를 쟁취하는 과정으로 표현한다. 그리고 결국 니나는 스스로를 찌르며 영화 전체를, ‘백조의 호수’를 부정한다.



(* 베스가 위노나 라이더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 그녀가 주연을 한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