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1963년, 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

지하련 1998. 10. 8. 21:30


      사라 본Sarah Vaughan의 낡은 테잎을 선배가 하는 까페에
     주고 난 다음, 난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
     그녀의 앨범을 샀다. 영화 <<접속>> 때문에 나온 '2 for 1' 모
     음집. 예전부터 들어왔던 음악이 영화나 광고 때문에 유명해지
     면 기분이 나빠지기 일쑤다. 누군가에게 음악을 추천하면 대체
     로 무시해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똑같은 음악이 영화나 광고에
     서 유명해지면 내가 권했다는 사실을 잊고선 그 음반을 사선,
     이 음악 좋지 않냐고 내게 말한다. 이건 소설이나 책 따위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하면 잘 듣지도 않다가 교수나 유명한 작
     가가 이 책 좋으니 읽어보라고 하면 바로 산다.

                 *               *    

       '1963년에 이파네마 아가씨는 이런 식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 역시 마찬가지
     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그 이후로 나이를 먹지 않는
     다.
       (... ...)
       그러나 레코드 속에서는 그녀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스탠
     게츠의 벨벳 같은 테너 섹스폰의 선율 속에서는, 그녀는 언제
     나 열여덟이며, 활달하고 부드러운 이파네마 아가씨다.
       내가 턴테이블에 레코드를 걸고, 바늘을 내리면 그녀는 곧
     모습을 나타낸다.'
       - 『1963년. 1982년의 이파네마 아가씨』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 <<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유유정 옮김. 문학
     사상사. 1996)에 실린 작은 단편)
      
                *             *    

       아스트러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The Girl From Ipanema'가 담긴 음반을 사라 본의 음
     반과 같이 구입했다. 몇 초의 고민 끝에 집어든 음반. 하루끼
     가 이 음반의 한 노래에 소설을 쓴, 매우 매력적인 음반.
      
       책도 두 권을 구입했는데 놀랍게도 책을 살 땐 가슴이 떨리
     지 않았는데, 음반을 구입할 땐 가슴이 떨렸다. 이젠 완전히
     도취된 모양이다. 이래저래 모은 음반이 LP, CD 합쳐서 250여
     장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것이 내 사소한 평가
     다. 얼마나 많은 돈을 허비할까.
  
       재즈광으로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나중에 그를
     만난다면 소설 따위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않고, 맥주를 마시며
     그의 턴테이블에다 LP를 걸고 재즈에 대해 몇 마디 하고 난 다
     음 음악이나 들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가 다시 재즈까페를 운
     영했으며 좋겠다. 놀러가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