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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2011. 5. 3 ~ 8. 28. 국립중앙박물관
(Princely Treasures - European Masterpieces 1600 - 1800 from the Victoria and Albert Museum)

 

이 글을 적고 있는 오늘이 전시 마지막 날이네요. 전시를 보러 가지 못했다고 해서 서운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101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지만, 궁정 문화를 알기에 모자라기도 하고 더 많은 유물을 전시한다고 해도 궁정 문화를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이 전시를 간 이유는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를 알고 싶어서 라기 보다는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의 명성 때문입니다. 빅토리아앤앨버트 박물관(V&A Museum)은 장식 미술, 공예, 도자기, 조각 등에 있어서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컬렉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 450만 점의 유물을 가지고 있는 V&A박물관의 101점이 이번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 소개되었으니 기운 빠지는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전시는 ‘유럽 궁정의 미술 후원’, ‘권세와 영광’, ‘종교적 장엄’, ‘실내장식’, ‘패션과 장신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나는 것은 상아 조각 작품, 세밀한 장식의 담배갑 뿐입니다. 전시장 가운데 서 있는 헬레니즘 시기에 그 모습을 드러낸 코린트 양식의 기둥은 너무 어색했습니다. 도리어 바로크 양식의 건물 파사드를 일부 붙여놓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근대 유럽의 궁정 문화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화려하고 우아한 생활? 진귀한 장신구와 가구들? 아름답고 유쾌한 연애? 그러나 유럽의 궁정 문화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진짜로 유럽 궁정문화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전시보다 이지은의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이라는 책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는 아름다운 공주가 혼자 방에 앉아 우아하게 수를 놓으며 왕자를 생각하는 로맨틱한 광경이 흔히 나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6세기 왕족들의 생활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로맨틱하지 못했다. 우선 공주가 혼자 수를 놓으며 우아한 침대에서 왕자를 생각한다는 것부터가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벽난로가 설치된 방이 몇 개 안 되는데, 왕과 공주들이 독방을 차지해 버리면 나머지 궁정인들은 어디서 잠을 잤겠는가. 추운 복도에서 덜덜 떨다가 얼어 죽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사실 당시 공주는 자매인 다른 공주들뿐만 아니라 자기 시종들까지 데리고 한 방에서 잤다. 시종들은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인 호위병과 기사들까지 포함된다. 한 방에 50명 남짓한 남녀가 혼숙을 한 것이다. - 25쪽



지금이야 밤에도 환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만, 19세기 이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요즘 시대와 비교해본다면, 높고 두꺼운 벽, 넓은 유리창이라고 하지만 현대의 그것보다 좁아 보이는 창들로 이루어진 방에서 지내는 밤을 생각해본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특히 비가 내리는 12월 초 궁궐에서의 일상 생활이라면?어딘가에서 들리는 자신에 대한 비방, 안 좋은 소문, 궁 밖으로의 여행은 보이지 않는 대담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이유로 유럽 왕족들끼리의 오랜 근친혼으로 인해 태양왕 루이 14세와 같이 장수한 이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여성들의 화장은 어땠을까요?

백분을 탄 장미수에 계란 흰자 거품을 넣고, 말린 오징어 가루와 장뇌 가루, 돼지기름을 넣은 다음 이것을 얼굴에 바른다. 하얗고 건조한 피부를 원할 때는 수은과 재, 모래를 넣어 굳힌 고약을 얼굴에 문질러야 된다. - 42쪽


하얀 피부에 대한 동경으로 인해, 상당수의 귀족 부인들은 수은 중독이었습니다. 수은을 얼굴에 발랐으니, 안 될 수가 없었겠죠. 하지만 이런 마법과도 같은 화장법은 궁정 사회의 핫 트렌드로, 베르사이유에서 하번 유행하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이런 시대의 궁정 문화라는 게 어떤 것이었을까요?그래서 저는 궁정 문화의 화려함 뒤의 우울하고 애잔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당시 여인들의 삶은 종종 애잔한 느낌을 준다. 여덟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약혼을 하고, 열두세 살에 결혼을 하고, 쉴 새 없이 아이를 낳았던 여인들은 스물다섯 살만 되어도 젊음의 생기를 잃고 시들어갔다. 높은 지위의 왕족이 아닌 이상, 여인들은 애완동물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1장에 등장한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궁정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서열을 나눈 기록을 보면, 궁정의 하녀들은 그녀의 개나 앵무새보다도 지위가 낮았다.
- 48쪽


‘바로크 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전을 본다고 해서 17 - 18세기의 궁정 문화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눈으로 보기에 대단히 장식적이거나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가지기도 어렵고요. 차라리 서울 시내에 있는 여러 백화점의 명품관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 전시는 제가 보기엔 다소 실망스러웠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하긴 국내에는 유럽 장신 미술에 대한 전문 연구자가 몇 명 정도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빅토리아앤앨버트박물관을 알린 것만으로도 의미를 두어야 할까요. 그리고 이 전시와 함께 '145년 만의 귀한, 외규장각 의궤'를 본다면 동시대의 서유럽과 조선의 궁정 문화를 비교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관련 글)
2006/09/18 - [책들의 우주/이론] -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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