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구한말 조선 어머니의 모습

지하련 2011. 10. 3. 13:58


원고 쓸 일이 있어 아침부터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한다. 몇 개의 관련 기사와 책들을 이리저리 펼쳐놓고 있다, 잠시 쉬어가는 겸, 쓸 원고와는 아무 관련없는 책을 펼쳐 읽는다. 에밀 부르다레의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그리고 그 속에서의 문장들.


조선에서 소녀와 숙녀를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적령기가 되면 계집 아이는 곧 결혼하기 때문이다. 이미 말했다시피 총각은 결혼할 때까지, 즉 열다섯에서 서른 살까지 어른으로 보지 않고, 매사에 논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그들은 혼인할 때까지 등 뒤로 머리를 땋고 다닌다. 망사 말총 모자[갓]는 결혼하고서 상투를 틀 때나 쓰게 된다.
조선 부인의 경우 만약 그녀가 지적이고 남편이 방탕하지 않다면, 가정에서 상당한 권위를 누리며 종종 남편보다 더 강인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부인은 습관에서든 이타주의 때문이든 고생할 각오가 되어 있고, 불행과 역경에 호락호락 체념하지 않는다. 그녀는 악착같이 일해서 비참함을 이겨낼 것이지만, 낙심하거나 게으른 남자는 싸우기보다 차라리 굶어 죽는 편을 택한다. 여자들은 대개 고생이 많다. 아이들조차 남성이 우월하다는 관념을 일찍이 배우고, 자기 어머니를 아버지보다 덜 존중하게 된다. 그래도 모성애는 조선인에게 현실의 슬픔을 잊게 해주며, 모든 고통의 무게를 덜어준다. 어머니는,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이, 이웃집 자식보다 더욱 귀엽고 잘나 보이는 자기 자식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고통을 삭인다. 집안일을 할 때도 그녀들은 큰 띠로 둘러메는 식으로 아기를 등에 업고서 일을 한다.
- 에밀 부르다레, '대한제국 최후의 숨결', 140쪽, 글항아리


백 여년 전 조선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나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머니만 존재하는 나라, 조선. 그건 지금도 그럴까.

종일 서재 밖으로 나가지 못할 것같다. 가끔 원고 청탁을 받다 보니, 원고 쓰기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에밀 부르다레의 책, 그 명성에 비해 국내 독자에게는 잘 읽히지 않는 듯하다. 하긴 구한말 조선에 대한 역사책도 많지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