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폐허에 대하여

지하련 2011. 11. 8. 18:02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뒤에야 김경주라는 시인이 있으니, 한 번 읽어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하긴 대학 졸업하고 난 뒤, 직장생활을 하고 난 뒤, 시집을 샀던 적이 몇 번 되지 않았을 테니... 요즘 나오는 시인이나 소설가에겐 흥미를 잃은 지 오래... 그러다가 읽게 된 김경주. 

아래 글은 얼마 전 휴간으로 들어간 브뤼트 마지막 호에 실렸다. 예전부터 한 번 블로그에 옮기고 싶었는데, 이제서야 올린다. 이런 글 참 오래만이었다.  

언어는 폐허 위에서 생겨난다. 언어의 폐허로부터 시는 태어난다. 시는 자신의 폐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는 폐허의 속살이다. 시는 언어와 폐허가 교미한 흔적이다. 시는 언어의 폐허를 채운다. 언어는 인간의 폐허를 망각하지 않을 때 누군가에게 가서 발화된다. 한 인간의 사랑이 된다. 혁명이 된다. 시가 된다. 언어는 지상의 폐허를 목격하고 증언하지만 폐허를 바꿀 수 없다. 언어는 폐허의 잔해이기 때문이다. 언어뿐만 아니라 폐허 또한 누군가의 입안에서 흘러나와 누군가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폐허를 감추기 위해 시를 쓰기도 하지만 폐허 뒤에 숨어서 언어를 남발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폐허에 숨어 살며 수많은 언어로 귀향을 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때로 그것이 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가 되기 위해선 자신의 언어 뒤에 숨어있는 폐허를 장악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 폐허는 스스로의 언어를 찾아 시가 되기 때문이다. 시가 되려거든 타인의 폐허를 함부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 시가 되려거든 자신의 폐허를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세상의 곁으로 가서, 폐허가 새로운 지상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다리 없는 새가 폐허 위에 내려앉아 시가 된다. 
- 김경주, '폐허의 복화술', 2011년 7월 브뤼트(Br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