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사

바로크의 자화상 - 안토니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

지하련 2012. 1. 3. 22:54


안토니 반 다이크
자화상 
1630년도작, 24.1cm*15.6cm, 에칭 판화 




오래된 작품은 어느새 내 일상과는 너무 많이 멀리 떨어져있다. 녹슬어가는 내 지식은 서재 한 구석에 박힌 강의노트 속에서 박제가 되고, ... 바로크의 초상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와 15세기 초의 반 아이크 형제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음을 이 작은 자화상이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여백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거나, 그런 피치 못할 사정을 보는 이들이 이해해 주겠거니 하는 여유로움이 있거나, 한 발 더 나아가 여백을 작품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으로부터 시작하거나 ... 여러 가지 이유를 따져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서양 미술사에서 거친 여백을 드러내거나, 또는 고른 채색의 화면 처리가 사라지는 것은 바로크 시대부터다.  마치 하나의 원리로부터 시작해 예외가 되는 모든 것을 다 잘라내는 듯한 자신만만한 태도를 가졌다고 할까. 마치 '오캄의 면도날'같지 않은가. 

고딕 시대의 유명론이 본격적인 근대적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 영국의 경험론이라면, 그 경험론적 태도가 묻어나는 것은 바로크 시대의 초상화가 될 것이다. 뭐랄까. '인생은 살아봐야 되는 것'이고, '살아봐도 잘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그런 느낌의 작품들... 

할 말이 많은 듯하지만, 정작 세상을 살아보면 하고 싶은 말은 나이가 들수록 사라지더라. 그리고 이제서야 말을 할 때가 되었다 싶으면 해질녁이 되고 저 먼 평원 너머로 붉게 물은 하늘이 펼쳐진다. 바로크에서 19세기 후반까지 예술가들과 사상가들은 그런 해질녁 밑에 모여들 뿐, ... ... 실은 나도 그렇게 변해가는 건 아닐까, 요즘 들어 종종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