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비즈

권력의 경영, 제프리 페퍼

지하련 2012. 1. 30. 12:23


권력의 경영 Managing with power: Politics and Influence in Organizations
제프리 페퍼 Jeffrey Pfeffer (지음), 배현 (옮김), 지식노마드


권력의 경영 - 10점
제프리 페퍼 지음, 배현 옮김/지식노마드



제프리 페퍼가 아니었다면, 이 책을 손에 들진 않았을 것 같다. 제프리 페퍼의 명성과는 무관하게, 나는 그의 책을 거의 읽지 않았고 이번 기회에 한 번 읽어보자는 생각에 든 책이 바로 이 책, '권력의 경영'이었다. 그러나 저자도 지적하듯, '권력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이 책은 순전히 제프리 페퍼가 저자였기 때문에 손이 갔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저자의 명성 그대로, 리더십과 조직 운영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읽어야 하는 꽤 좋은 책이었다.

저자는 책의 초반부터 (정치적) 권력의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해 혈액 수혈을 통한 에이즈 감염을 예로 든다. 그리고 그 사례 - 혈액 수혈과 에이즈 감염의 연관관계, 과학적인 규명이 아닌 지리한 정치적 결정의 과정, 그 사이 약 12,000명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하긴 미국이라고 다를까.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이 바로 정치적 권력의 차이라고 말하는 제프리 페퍼는 그래서, 왜 권력이 중요한가를 이 책을 통해 따지고 묻는다.

해당 사례를 다시 부연하자면 아래와 같다.

1981년 3월, 에이즈 감염자 혈액의, 최초로 알려진 수혈이 이루어지고 그 해 7월 역학적 증거로 볼 때 ‘게이암’으로 알려진 후천성 면역결핍증 에이즈의 혈액 전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지지만, 과학적 근거와 확신은 정치력 앞에 무능하기만 했다.(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이 생각나는 구절이다)

2년 후인 1983년 1월, 돈 프랜시스(질병통제센터의 전염병 연구자)는 미국 공중 위생국의 임시 자문위원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합니까? (중략) 얼마나 많은 목숨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몇 명이나 죽어야 이걸 믿을 건지 말해보시오. 그때가 되어야 다시 회의를 열어 뭔가 시작할 수 있는 모양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1983년에도 아무런 결정이 내리지 않은 채 계속 에이즈 감염자의 혈액으로 수혈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도 (한국의 어떤 그룹 사람들은 지금도 찬양하여 마지않는) 미국에서! 그리고 1984년에까지. (지금도 이와 유사한 일들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혁신과 변화에는 정치가 개입한다. 조직적 권력과 영향력을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고, 목표를 관철시키는 기량이야말로 문제를 파악하는 기량만큼이나 중요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만큼 조직은 추락하고 뒤처지기 마련이다.
- 25쪽



결국 정치, 또는 (정치적) 권력의 문제였던 셈이다. 권력을 통한 강력한 실행력의 확보!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제프리 페퍼는 여러 사례를 거론하며 조직 내에서의 권력Power이 왜 중요하며 그것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목표를 관철하는 방법으로 위계적 권위를 동원하거나, 강력한 공유 비전이나 조직문화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전자의 방법으로 ‘권력’을 주목한다.


존경, 경쟁력, 지적 능력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세부적인 사항까지 수행하기 위해서는 친구나 자기편을 필요로 한다. 혼자 하기엔 무리이기 때문이다. 또 라이벌과의 권력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도 친구가 필요하다. 자원을 발굴하여 개발하는 것만큼이나 자기편을 만드는 것 역시 필수적인 활동이다. 자기편과 자원은 중요한 권력의 원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
- 158쪽



여러 사례와 분석, 참고연구들을 바탕으로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가를 자세하게 파헤치는 이 책은 ‘권력’에 대한 탁월한 연구서이며, '권력'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고 있고 심지어 반감까지 가지고 있던 나에겐 꽤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그리고 이 책은 처세적 관점에서의 권력 탐구가 아니라 권력의 조직적이고 학술적인 측면이 더 부각된다(또는 처세적 관점을 학술적으로 풀어낸 것일 수도 있다).


나의 경험과 연구, 관찰에 의하면 조직 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특히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중요하다.
1. 에너지, 지구력, 신체적 스테미나
2. 에너지를 집중하고 노력의 낭비를 피하는 능력
3.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잃고 이해할 수 있는 감수성
4.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여러 수단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것과 관련된 융통성
5. 필요한 때 분쟁과 대결 구도에 기꺼이 끼어들 수 있는 과감함
6. 일시적으로라도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훌륭한 조력자 역할에 충실하거나 팀플레이어가 되어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능력
- 232쪽


과연 우리는 제프리 페퍼가 이야기하는 특징들을 다 갖출 수 있을 것인가?

구조적 권력을 키우는 비결은 자원, 정보, 공식적 권위 등이 풍족한 단위 조직에 대한 통제권을 얻음과 동시에, 적수들이 구조적인 권력 기반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 388쪽



그러면서 적수들을 구분하고 그들이 권력 기반을 얻지 못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은 논리에 의해 설득되지만, 감정에 의해 움직인다. 그래서 우리가 성공적으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우쭐한 기분이 늘게 하는 언어, 상징, 의식 및 배경들을 섬세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399쪽)



하지만 이 책은 권력을 얻기 위해 어떤 행위를 해야 하는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정말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해 시선조차 주지 않으면서도 권력에 대한 암묵적인 부러움이나 동경을 경계하며, 권력을 목표를 달성하는 실행력의 핵심임을 강조하며 권력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예로 드는 권력을 통한 실행력은 레이건 대통령과 같은 경우도 포함된다.

레이건 대통령은 세금의 적으로서는 세계 챔피언이라는 자신의 타이틀을 고수하면서도 집권 기간 동안 온갖 세금 인상 법안을 제정했다 ... ... 정치인들이 그에게서 배울 점은 세금을 인상하지 않는 듯이 말함으로써 세금 인상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 Herbert Stein, 'Confession of a Tax Addiction', The Wall Street Journal (October 2, 1989) (404쪽에서 재인용)


그런데 이 책에서는 실패 사례로 종종 등장하는 스티브 잡스는 정말 흥미로웠다. 애플 초창기 시절의 스티브 잡스와 픽사 시절의 스티브 잡스, 아이팟 이후의 애플에서의 스티브 잡스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여기에 대해선 아마 다른 연구 서적이 나오지 않을까.  

(관련 포스트: 조직에서의 언어의 중요성: 스티브 잡스의 탁월한 연설 )


*

간단하게 리뷰를 적고 난 다음, 아마존에서 확인해보니, 의외의 혹평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온라인 리뷰 평점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문화적인 차이일까? 하긴 한국은 (내가 보기에 너무나도) 형편없는 책에도 좋은 평점이 매겨져 있는 경우를 너무 자주 보는 터라 ...

  Managing with power: Politics and Influence in Organizations


낮은 평점의 이유들 중 언급해볼 만한 의견은 아래와 같다.

1. 너무 학구적이어서 실제 적용하기 어렵다.(나는 이것을 높게 평가했는데..)
2. 몇 개의 사례들로 전체를 설명하고 있다(책을 읽어보면 실제로 몇 개의 사례들이 반복되어 나온다). 
3. 직장 생활 5년 이상 해보면 다 아는 사실을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있다.(미국적 상황일까, 아니면 리뷰어의 개인적 상황일까? ... 하긴 5년 정도 해보면 다 아는 사실일 수도 있겠다)

몇 개의 낮은 평점을 매긴 리뷰가 있었고 대다수는 높은 평점이었다.

나는 이 책의 평점을 줄 수 있을 만큼 주었을 정도로 무척 좋았다.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