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앤서니 곰리 Anthony Gormley

지하련 2012. 8. 25. 09:10


밀린 신문들을 읽다가 앤서니 곰리(Anthony Gormley)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흥미롭게도 그는 고고학과 인류학 전공자이다. 성공한 CEO들 중에 경영학을 전공한 이들이 많지 않듯이, 뛰어난 예술가들 중에는 예술을 전공하지 않는 이들도 꽤 있다. 하지만 한국은 너무 '전공 편향주의'가 심한 듯하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 순수 미술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이를 보기 드물고, 학연은 여전히 심하기만 하다. 


이는 미술 뿐만 아닌 것같다. 솔직히 학부 시절 **전공을 이수했다고 해서 그 분야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대학원 석사 학위를 받아도 해당 전공 분야 뿐만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 대해 무식한 경우를 너무 봐왔기 때문에 ... 사정이 이렇다보니, 해당 전공에 대해서 무지한데, 나머지 분야에 대해선 어떻겠는가! (결국엔 전공자를 찾게 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앤소니 곰리 같은 예술가가 나오리라는 기대를 한국에서는 애초부터 접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씁쓸한 생각에까지 미친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Antony_Gormley



뛰어난 예술가들 상당수는 생각이 깊고 언변이 좋다. 심지어 글까지 잘 쓰기도 한다. 또한 현대 예술가라면 의당 그래야 한다. 칸딘스키가 미술이론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현대 예술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우환이 여러 권의 책을 낸 것도 여기에 속한다. 앤서니 곰리의 인터뷰를 옮기는 이유는 현대 예술이 고민하는 한 지점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간, 의사소통, 공유에 대한 탐구, 육체와 정신, 라이브 캐스팅, 종교 등에 대한 그의 생각들은 현대 예술가들 대부분이 고민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인형이나 장난감만 한 크기의 조각을 만드는 것은 매우 재미있고 특이한 경험이다. 문득 전체를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 순간, 나는 당신의 눈동자나 입술의 표현에 집중하지만 이는 전체적인 몸의 표현이 아닌 부분적인 표현일 뿐이지 않나. 아무튼 나는 신체를 27개의 블록으로 구성하면서 단순화하고자 했다. 그러고 나서 인간의 여러 심리를 전체적인 몸짓들로 표현할 수 있을지 보고 싶었다. 인간의 감정을 뼈와 근육과 피부를 표현하는 블록을 이용해 통역한다는 작업 자체가 매우 흥미로웠다. 블록들이 상호 관계를 맺으면서 어떻게 결합하느냐는 인간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본질적인 요소가 된다. 예를 들어 이 도록에서 서 있는 세 가지 조각은 언뜻 같아 보이지만 블록의 결합이 미미하게 다르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각각 감사·간절함·자기방어라는 미묘한 감정을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몸짓을 우리는 의도하지 않는다. 저절로 그렇게 될 뿐이다.” 



“육체의 자유를 제한할 때 우리의 정신은 더 멀리 나아간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커다란 패러독스다. ‘명상’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라이브 캐스트를 통해 움직임의 반경과 자유로운 표현 능력을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모든 육체의 컨트롤을 기꺼이 포기함으로써 한층 더 자유로운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종교는 어린 시절 중요한 부분이기는 했지만 나는 결국 종교를 믿지 않는다. 종교는 천국과 지옥, 죄와 벌, 도덕적인 명령 등 매우 파워풀하면서 중요한 교리를 전파하지만 동시에 이는 위험한 사상이 될 수 있으며 현대사회에서 종교는 더 이상 좋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불교는 종교를 뛰어넘어 인생의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살아갈 것을 가르치며, 물질세계 속에서 우리의 정신·육체·생각·의식이 삶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가르친다.” 

- 중앙선데이, 2011년 5월 15일자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21699







춮처: http://www.pablogt.com/artists/antony-gormley/


(라이브캐스팅 작품이다. 라이브캐스팅이란 실제 사람 위에 석고를 입혀 틀을 짜는 것을 뜻한다. 포스트 모던 조각가인 조지 시걸도 라이브 캐스팅을 통해 현대인의 정신적 쓸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출처: http://mocoloco.com/art/archives/001040.php


(위 인터뷰에서 인형이나 장난감 크기로 만든 조각이 이 작품이다. 전시장에 인형 크기의 작품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