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아포리즘 철학, 조중걸

지하련 2013. 6. 9. 00:57
아포리즘 철학 - 10점
조중걸 지음/한권의책
 


아포리즘 철학 
조중걸(지음), 한권의책 




결국 철학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가를 말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오랜 철학적 탐구가 세계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철학은 기껏해야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왜 모를 수밖에 없는지, 새로운 앎은 어느 지점에서 개시되어야 하는지를 말해줄 뿐이다. 이것이 몽테뉴가 말한 바 "내가 무엇을 아는가?"의 의미다.
따라서 철학은 우리에게 겸허하라고 말한다. 오랜 탐구 끝에 우리는 기껏해야 우리가 큰 무지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또한 무지에 잠기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뿐이다. 위대했던 니콜라우스 쿠자누스가 신과 관련해 "무지無知의 지知"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서문 중에서  



책이 서점에 나오자마자 구입한 것이 작년 이맘때였는데, 이제서야 겨우 다 읽고 되새기게 된다. 이 작은 책이 가지는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차라리 두꺼운 서양철학사 대신 이 책을 읽는 것이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나 태도를 가지게 하기 위해 적절하지 않을까. 

특히 쇼펜하우어, 니체,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설명은 나에게 다시 한 번 그들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아마 몇 명은 이 책의 편파적인 관점 - 저자는 상당수의 근대 독일철학자들을 건너가버린다. 대신 쇼펜하우어와 니체로 채운다. - 에 대해 불만을 제기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이 도리어 현대를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한다. 

거추장스러운 낙관적 합리주의, 이성주의 대신 정직한 비관주의, 현실주의가 더 나은 법이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세계에 대한 이해와 인식, 그리고 삶에 대한 태도와 행동 사이에 놓여진 이 거대한 단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비관적 세계 인식 속에서 합리적 삶을 견지하려고 말도 안 되는 노력을 거듭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베르그송이 말하는 바, 지성이란 내 전부가 아니라 내 일부일 뿐이다. (이렇게 나는 변명을 하나 가지게 된다) 

이 책은 철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좋을 것이고 철학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충분히 좋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자주 만나게 되는 철학 책에서 읽지 못하는 내용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며, 그 알게 되는 내용은 그간 알아왔던 어떤 세계를 흔들어놓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