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내 젖은 구두 벗어 ...

지하련 2013. 7. 11. 09:54



지하철에서 내리자 마자 비가 와락!! 다 젖었다. .. 그리고 이문재의 시집이 떠올랐다. 오늘 해가 뜰려나. 오후는 내내 외근인데..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이 문재 


그는 두꺼운 그늘로 옷을 짓는다
아침에 내가 입고 햇빛의 문 안으로 들어설 때
해가 바라보는 나의 초록빛 옷은 그가 만들어준 것이다
나의 커다란 옷은 주머니가 작다

그는 나보다 옷부터 미리 만들어놓았다
그러므로 내가 아닌 그 누가 생겨났다 하더라도
그는 서슴지 않고 이 초록빛 옷을 입히며
말 한마디 없이 아침에는
햇빛의 문을 열어주었을 것이다

저녁에 나의 초록빛 옷은 바래진다
그러면 나는 초록빛 옷을 저무는 해에게 보여주는데
그는 소리없이 햇빛의 문을 잠가버린다

어두운 곳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수많은 것들은 나를 좋아하는 경우가 드물고
설령 있다고 해도 나의 초록빛 옷에서
이상한 빛이 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나의 초록빛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두꺼운 그늘의 섬유로 옷을 만든다
그는 커다란 그늘 위에서 산다
그는 말이 없다

그는 나보다 먼저 옷을 지어놓았다
그렇다고 나를 기다린 것도 아니어서
나의 초록빛 옷은 주머니가 작으며
아주 무겁다

극히 드문 일이지만 어떤 이들은 나의 이상한
눈빛은 초록빛 옷에서 기인한다고도 말하고
눈빛이 초록빛이라고도 말하는데
나와 오래 이야기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두꺼운 그늘을 먹고 산다
그는 무거운 그늘과 잠들고
아침마다 햇빛의 문을 열며 나에게 초록빛 옷을
입힌다 아침마다 그는






지구 여행 중인 갈색 구두를 사무실 한 쪽 벽에 비스듬이 세워두고 선풍기와 건조해지는 마음과 양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7월의 어느 목요일은 이렇게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