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사회변동의 이론, 리차드 아펠바움

지하련 2004. 2. 20. 11:56




사회변동의 이론 Theories of Social Change
리차드 아펠바움 R.P.Appelbaum 지음, 김지화 옮김, 한울


오래된 책이라 지금 시중 서점에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인문학 전공자라면 꼭 읽을 책이 아닌가 싶다.

언젠가 집에 온 사람 중에 사회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친 분이 있었는데, 방에 꽂힌 하버마스 책을 보고는 '이런 책도 읽어요'하면서 묻던 것이 기억난다. 도리어 난 그 물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상식으로는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역사서와 철학서는 기본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문화이론서니 기타 비평서들을 읽어야 한다. 그러니깐 기본적인 책은 다 읽어줘야 한다. 대학에서, 대학원에서 이런 상식적인 것을 가르치지 않으니 상당히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너무 어렵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인문학은 그 어떤 학문보다도 어려운 학문이다. 그래서 인문학이다. 사법고시생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는 것이 인문학도다. 예일대의 인문학 대학원에서는 힘든 인문학 전공을 포기하고 가는 곳이 로스쿨이나 경영대학원이라고 한다. 이야기가 잠깐 딴 곳으로 흘러갔는데,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요하임 빙켈만은 책을 읽기 위해서 하루 4시간만 자기 위해서 잠 습관까지 바꾸었다고 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인문학자로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주위에 알고 있는 위엄 있으신 대학 교수님들부터 살펴보라. 이런 사람이 몇 분 있는지. 이것이 바로 '인문학의 위기'를 만들어낸 원인이다. 인문학의 위기가 있다면 말이다.

서두부터 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은 사회학 책이고 사회학 전공자들만 읽어야 된다는 편견을 버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가령 미술사를 전공하는 이가 제일 먼저 읽어야 할 책은 서양철학사와 서양지성사, 서양문화사이다. 이러한 총론을 읽고 난 다음 각 개별 학자나 시대에 대한 서적을 읽어야 된다. 쓸데없이 화집 들고 다닌다고 미술사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사는 역사학의 한 분과학문이다. 그림책 보는 곳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흘러가고 말았다. 이렇게 흥분하는 이유는 요즘 공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점이다. 신기한 일이다. 책 좀 더 읽고 시간 아껴가며 공부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으라고 주문하는데 말이다. 여하튼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기로 하자.

아펠바움의 이 책은 사회 변동에 관한 여러 학설과 이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는 책이다. 사회 변동 Social Change에 관해선 이 책 한 권 정도는 읽어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그냥 한 권 통째로 외워둬야 되지 않나 싶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베끼는 편이 마음이 편하지.

간단하게 목차를 살펴보자.

머리말 - 예비적 정의
1. 진화론
1) 고전적 진화론: 진보의 관념
1. 찰스 다아윈
2. 단선적 사회진보이론
3. 유기체 이론: 전문화, 분화 및 통합
2) 진화론의 현대적 변형
1. 근대화론 또는 통시적인 단선적 변동이론
2. 기능주의와 체계이론의 여러 측면들: 적응성 향상
3. 신진화론: 다선적 진화, 일반적 진화와 특수적 진화
2. 균형이론 - 항상성 homeostasis 개념
1) 생물학에서의 유추
2) 사회과학에서의 이용
1. 기능주의와 체계이론
2. 문화지체이론
3. 인간생태학이론
3. 갈등이론 - 모든 사회유기체에 고유하게 나타나는 것으로서의 변동
1) 맑스주의: 변동의 변증법
2) 현대갈등이론: 맑스의 형이상학에 대한 거부
갈등관념의 유지
4. 생성몰락이론 - 성장과 쇠퇴의 과정
5. 사회변동이론의 분류 및 연구
1) 사회적 변동의 연구
1. 여러 주요 이론가들이 보는 변동연구 분야의 현상태
2. 대안적 도식
2) 사회변동의 이론들


제일 먼저 진화론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분야에 대한 연구는 19세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사회변동에 대한 일관적 설명을 한 중요한 학자들은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아마 다윈은 '과학자아냐'라고 반문할 지 모르겠으나, 다윈이 19세기와 20세기에 끼친 영향력은 마르크스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가 진보에 대한 개념, 가령 환경에 적응해나가 결국 성공하리라는 관념은 전적으로 다윈에게 의존된 것이다. 이러한 진화론의 성격은 마르크스에게도 나타난다. 미래에 대한 개념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이었지만, 이 미래에 대한 개념을 진화, 또는 진보와 연결 짓는 것은 19세기에 와서이다.

사회 변동 이론이란 사회가 어떤 요인으로 변화하고 발전해나가는가에 대한 이론들을 말한다. 가령 사회는 복잡한 방향으로 나가는가, 아니면 단순한 방향으로 나가는가 따위를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부분의 사회 변동 이론은 진화론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진화에 강조점을 두지 않고 사회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에 중심을 두는 이론(균형이론)과 사회 내의 갈등에 중심을 두는 이론(갈등이론), 이와는 무관하게 사회는 성장과 쇠퇴를 반복한다는 이론(생성몰락이론) 등이 있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학자들은 사회는 어떻게 변하고 어떻게 유지되는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도 무척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가령 마르크스는 사회변동을 '계급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보는데 반해 파슨스는 '균형 유지'에 무게를 둔다. 즉 사회는 어떤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 내에 어떤 변동이 발생하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변동이 다시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회는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을 한다.

생성몰락이론에는 슈팽글러, 소로킨, 베버 등의 학자가 속할 수 있다. 슈팽글러의 경우, 학자라고 보기에는 어렵고 그냥 수필가로 이해하는 편이 낫다. 그의 문장은 꽤 아름답고 감동적이긴 하지만 논증의 대상은 아니다. 최근 그의 <<문명의 충돌>>이 다시 출판되기도 했지만, 웃긴 짓이다. 그를 대단한 학자로 여긴다면 매우 큰 오해다. 아펠바움도 그는 생성몰락이론에 포함시키고 있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그의 이론은 검증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입문서로서도 매우 적당한 책이라 생각된다. 이 책을 읽고 뒤렌도르프와 소로킨에 대해서 따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뒤렌도르프의 경우에는 마르크스의 사회변동이론을 이어받으면서 논증가능한 형태로 이론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경험 데이터로 논증가능한 형태가 아니라는 점과 20세기 들어서 그의 이론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가 내세운, <<공산당선언>>이나 <<독일이데올로기>>에서 보여준 형이상학적이고 역사철학적인 배경에 있다. 적어도 이것은 통찰력 있는 것이며 현재까지도 그 빛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소로킨의 경우에는 사회변동의 체계를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모든 것들과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논리적 추론의 과정을 거친 것이라기 보다는 어떤 직관에 의해서 이루어진 작업에 가깝기 때문에 문제의 소지가 있다. 하지만 문화나 예술까지 포함시킨 그의 사회변동이론은 나로서는 꽤 흥미로운 부분이다.

리처드 아펠바움의 <<사회변동의 이론>>을 꼭 구해서 읽어보기 바란다. 매우 유용하고 정리가 잘 되어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