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우주/예술가

행복한 연인, 쿠르베

지하련 2014. 4. 4. 18:54




The Happy Lovers 

Gustave Courbet, oil on canvas, 77*60cm

1844 



외근 후 바로 퇴근하는 길, 서점에 들려, 참 오랜만에 미술 잡지 한 권을 샀다. 그리고 내 눈을 사로잡은 구스타브 쿠르베의 작품 하나. 행복한 연인.


... 뭔가 작위적인 느낌을 풍긴다는 점에서, 이들은 사랑하고 있다, 혹은 있을 것이다. 적당히 흥분해 있으며 이미 마주 잡은 두 손 사이로 비집고 들어갈 음악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남자는 내 사랑의 단어가 그녀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갔음을 기뻐하고 여자는 이 남자를 가졌구나 하며 안도의 미소를 띈다. 그들 뒤 배경은 먼 듯 가까운 듯 흐릿하고 군데군데 보이는 붉은 빛은 화창하던 오후가 끝나는 어느 무렵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그와 그녀는 포도주를 마시러 갔을 것이다. 쌉싸리하게 입 안을 풍요롭게 하는 메독 지방 포도주를. 


하지만 쿠르베는 이들이 헤어질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어떤 절정의 순간에 묘한 표정으로 쟁취한 듯한 그들의 미소 속에서 사랑의 본질을 다시 묻는다. 


어, 이게 사랑이야? 진짜 그래? 


마주 잡았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고, 서로 껴안고 있다고 해서 사랑이 아니다. 아마 쿠르베도, 나도, 그도, 그녀도 모르겠지만. 


아마 앙드레 말로의 말처럼 '죽음은 없고 죽어가는 내'가 있듯이, 

사랑은 없고 사랑하는 내가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개념이나 정의는 뒤로 밀리고 오직 행동하고 실행하는 내(moi)가 있는 세상. 

쿠르베는 다시 묻는다.

이 연인은 정말 행복한 것일까? 



* 쿠르베가 언급된 다른 글들. 


2007/07/29 - [예술의 우주] - 낭만주의와 인상주의 사이의 쿠르베

2005/08/30 - [책들의 우주/예술] - 명화를 보는 눈, 다카시나 슈지

2002/10/06 - [책들의 우주/예술] - 클라시커 50 회화, 롤프H.요한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