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지하련 2004. 4. 15. 23:44
사용자 삽입 이미지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롤랑 바르트 지음, 이상빈 옮김, 강



그가 걸어 나오는 걸 천천히 살펴본다. 텍스트로서의 삶. 문체로서의 몸짓. 운율과 절망. 또는 흐린 하늘의 유쾌함. 열정에 떨고 그가 손바닥을 내밀어 하얀 구름을 만들어 땅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나 금새 구름은 대기 속에서 흩어진다. 이번에 혀를 내밀어 구름을 만든다. 가슴으로. 무릎으로. 그의 육체 구석구석에서 구름들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금새, 금새 대기 속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죽는다. 그 자리에 흩어졌던 구름들이 모여들어 그를 만든다.

롤랑 바르트가 롤랑 바르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롤랑 바르트는 롤랑 바르트가 아니다. 동시에 롤랑 바르트이다. 롤랑 바르트는 단수이면서 복수이다. 텍스트이며 육체이며 언어이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이다.

그냥 읽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의 구름들로 만들어졌으니, 바람이 불면 날아가버릴 테니. 금새금새. 저기 롤랑 바르트가 사뿐사뿐 날아가는 모습을 보라.

(하나의 인생 : 연구, 질병, 임명들. 그 나머지는? 출강, 우정, 사랑, 여행, 독서, 즐거움, 공포, 신념, 즐김, 행복, 분노, 비탄, 한마디로 반향들? 작품 속에서가 아니라, 텍스트 속에서.)


1980년 3월 26일 파리에서 사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