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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영혼


피로사회 
한병철(지음), 김태환(옮김), 문학과지성사 



베스트셀러가 된 철학책을 읽었다. 한국에서 공학을 전공한 후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한병철의 <<피로사회>>. 몇 해 전 이 책으로 떠들썩할 때, 나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책의 내용보다는 마케팅의 힘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초 집 근처 구립도서관 서가에 새로 들어온 책 서가에 한병철 교수의 <<투명사회>> 몇 페이지를 읽고 난 다음, 바로 그의 책 세 권을 주문하고야 말았다. 그만큼 인상적이고 놀라웠다고 할까. 

단정적인 논조였지만, 일관성이 있었고 나에겐 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고 해야 할까.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Leistungsgesellschaft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Gehorsamssubjekt"가 아니라 "성과주체Leistungssubjekt"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 23쪽 


성과는 신자유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다. 그리고 나는, 우리는 그것을 달성할 수 있다. 기업의 목표를 지나 국가의 목표가 되고 가정의 목표가 되며, 너와 나의 목표가 되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가능성, 긍정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고갈시킨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다.'(24쪽)


긍정성의 폭력이 깃드는 곳은 부정이 없는 동질적인 것의 공간, 적과 동지, 내부와 외부, 자아와 타자의 양극화가 일어나지 않는 공간이다. 
(... ...)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privativ하기보다 포화saturativ시키며, 배제exklusiv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exhaustiv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 21쪽 


그는 피터 한트케를 인용하며, 한트케가 이야기하는 '근본적 피로'를 끌어들인다. 성과사회의 피로를 벗어나기 위해 한트케의 피로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피로는, 현실 사회에 묶인 현대인들에게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건 한국적 상상황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매우 짧은 책이고 압축적이다. 의외로 책 읽는 속도는 느리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읽은 지 몇 달만에 쓰는 서평인 탓에 허술하긴 하지만, ... 이 책 무척 좋다. 일독을 권한다. 

*     *   
덧붙이는 글 1)
맥그레이스의 <<경쟁 우위의 종말>> 마지막 부분은 개인에 대한 전략에 대한 것이다. 경영학은 이제 기업을 지나 개인의 차원까지 확대 적용된다. 그런데 동시대의 탁월한 인문학자들은 경영학과는 정반대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어느 것이 옳고 그른가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 시대가 가진 갈등 국면을 여실히 드러낸다고 할까. 어쩌면 미국적 이데올로기와 유럽적 이데올로기의 충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를 대학 교육에 적용하면 아주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인문학의 성과는 보이지 않고 계량적 측정이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과사회의 피로 속에서 인문학은 죽어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성과사회 속에서 직장인 교수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성과사회에 적응하다보니,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후자라고 보지만, 인문학 교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피로사회 - 10점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문학과지성사





Comment +4

  • 2015.07.08 01:54

    비밀댓글입니다

  • 지하련님 추천 글보고 책 읽어봤습니다. ㅎㅎㅎ


    제 생각엔.... 인문학이 의외로 굉장히 부르주아 스러운 분야라는데 가장 큰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인문학자의 급여는 배고플지 몰라도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일만큼은 결코 배고프지않기 때문입니다. ㅋㅋㅋ

    게다가 인문학적 감성 및 능력(?)을 통해서 수혜를 얻고자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취업따위를 노리는 사람들이 아닌 듯합니다. 요즘 거부가 되는 실크로드라는 IT의 핫한 아이돌들의 흔한 비하인드 스토리 역시 인문학적 소양인 경우가 많습니다. 장래희망이 최소 자기사업체 설립에서 최대 세계적인 기업 총수정도 스케일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이 인문학인듯 합니다.(혹은 사회를 어느 방향성으로든 우선 엎어보겠다는 야심가이거나;;;;) ㅎㅎㅎ

    얼마 살진 않았지만;;; 살수록 사회라는 단어가 합리, 이성, 원리, 원칙, 개념 과는 전혀 별개의 개념이라는 생각이 굳어집니다 ㅜㅜㅜㅜ

    • 실은 합리, 이성, 원리, 개념과 사회, 혹은 우리 삶은 매우 깊숙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걸 철학 서적을 읽으면서 파악하기란 쉽지 않아요. 그리고 '굉장히 부르주아'스러운 분야가 된 것도 없지 않아 있는 듯해요. 저같은 경우에도, 돈벌이와는 직접적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돈벌이와 관련없는 부분에 대한 의견까지 피력하기도 하고 글을 남기기도 하니 말이죠.

      그런데 이것은 '사랑'과 비슷한 종류입니다.돈벌이와는 무관하죠. 하지만 살아가다가 마주하게 되는 문제들의 깊숙한 곳에는 철학적인 질문이 있죠. 가령 '왜 나는 그/그녀를 사랑하는 것일까'따위의 질문 말이죠. '왜 나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왜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일까?'라는 질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왜 나는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질문도 비슷합니다. 실은 이런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철학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고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철학의 백미는 서양에서는 플라톤이 될 것이고, 동양에서는 공자가 될 것입니다. 최초에 질문한 자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의 답을 구한 자가 있을 것입니다. 최초의 철학은 동시에 문학이며, 기하학이고, 자연과학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사회가 복잡해지는 만큼 철학도 복잡해졌고 우리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듯, 철학도 보다 단순하고 분명한 일상어로 우리 삶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철학 책은 뭔가 여유로운 사람들이 읽는 책 비슷하게 여겨지는데, 실은 그렇지 않고, 도리어 여유롭지 못한 이들이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왜냐면 여유는 세상을 얼마나 깊이 있게 보고 이해하고 대처하느냐에 달려있으니깐요. ^^

  • 저도 지하련님께서 정성스럽게 달아주신 답글에 모두 동의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어쩌면 부르주아구나 ㅋㅋㅋ 라는 생각에 저런 답글을 달아봤습니다.

    저는 ... 인문학의 힘을 누구보다 믿습니다. 다만, 대중은 저와는 의견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은 저를 힘들게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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