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금주禁酒의 시절

지하련 2016. 4. 18. 22:26



금주(禁酒)가 금주(琴酒, 거문고와 술)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 보니, 한달 이상 술을 마시지 않은 게, 그 때 이후로 처음인 것같다. 나 혼자만의 사랑에 빠져, 나 혼자 발광하다가 차였을 때. 그리고 한참 후 그 때 그 소녀를 다시 만났는데, 그 땐 왜 계속 만나지 않았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그 소녀 참 좋아했는데 말이다. 그러나 나, 잘난 척하지만, 내 깊숙한 곳엔 어떤 컴플렉스가. 결국 그런 문제와 부딪힌다, 그러니, <<하나비>>같은 영화만 좋아하는 것이다. 막판에 가서 폭발하곤 끝장내는. (하긴 컴플렉스 없는 현대인이 어디 있을까. 거대 도시에서의 삶,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강력한 경쟁을 경험한 지 이제 고작 150년 정도 되었는데, 저 오래된 농경생활에서 벗어나...)  


침묵의 끝은 폭발과 함께 오는 정지. 


한 달 정도를 쉬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번 일은 3달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데, 이런 직업적 불안정함이 나는 이제 싫다. 몇 군데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볼 예정이다. 사업을 꿈꾸지만, 지난 일 년 간 경험을 돌이켜볼 때, 나는 아직 사업을 감당할 능력이 되지 못한다,고 결정내렸다,고 여긴다. 


그 사이 책 읽는 눈과 글을 쓰는 손, 그대를 만나러가는 발, 화사한 색을 마주 하는 가슴,들이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때 먼지를 치워주던 이들이 어디론가 사라진 21세기. 


불가피한 이유로 한 달 반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있는 지금, 술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나를 보며, 스스로 신기한 듯, 묻곤 한다. 정말 술 생각이 없는 거야? 


실은 도망치고 싶은 거다. 어쩌면 모든 이들이 지금 여기에서 도망치고 싶은 거다. 다원주의는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개인주의는, 결국 힘없고 어리석은 개인에게 거창한 자유(결국엔 전혀 자유롭지 않았던)와 감당하기 어려운 책임(자신과 무관한 사건들에 대해서까지)을 묻는다. 결국 자유를 누리고 책임을 다하려면, ... 글쎄, 의외로 어렵고, 화가 나고, 불공평하고, 뭔가 저질러야만 할 것같은 느낌에 휩싸인다. 결국 자유도 버리고, 책임도 버린다. 그냥 시키는 대로 사는 거다. 


하지만 나는 무뇌아가 아니다. 


비 속 바람에 우산이 날렸고 나는 없는 힘마저 꺼내 우산을 잡았다, 그렇게 그 때 사랑을 잡았다면, 그렇게 기회를 잡았다면, 그렇게 탁월한 선택을 했다면, 그 아름다운 우산은 날아가지 않았을 텐데, ... 어느 사월 월요일, 비가 왔고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비가 그치고, 바람이 멈추고, 어둠이 내려오고, 동화책을 읽어달라던 아이가 잠에 들고, 의미 없는 잔소리를 하던 아내가 아이 옆에 눕는다. 


아, 그런데, 이 노래, 너무 좋기만 하다. 금주琴酒를 하지 못하고 금주禁酒를 하는 중년에게, 이런 애잔한 노래가 어울리는 법이다. 더 늦기 전에 춤도 배우고, 악기도 배우고, 사랑도 배워야겠다. 더 늦기 전에, 사랑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