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귀향, 자끄 프레베르

지하련 2016. 6. 19. 23:48



귀향

자끄 프레베르 Jacques Prevert 

안민재 역편, 태학당 






헌책방에서 구한 시집. 예전엔 외국 번역 시집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긴 시집 읽는 이도 드문 마당에... 


번역이 다소 형편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오늘 다시 보니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형편없는 것이 아니라... 


1994년에 출판되었고 인터넷서점에선 검색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래 소개한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닫혀있는 마음은 밖으로 무너지고 저녁 바람을 새삼 느끼고 저 하늘 달빛이 이 버릇없는 작은 도시의 사람들 위를 비추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될 것이다. 


대학시절 불어로 시 읽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젠 불어 단어들이 머리 속에서 흔적으로 남았다. 시를 읽으며 술을 마시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그 시절 탓에 지금 삶이 어려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 갈피 잡을 수 없는 중년의 봄날이 이어진다.  


 



공원 Le Jardin 




우주 속의 별

지구 속의 

파리

파리 몽수리 공원에서

어느 겨울 아침 햇빛

네가 내게 입 맞춘 

내가 네게 입 맞춘

그 영원의 한순간을

다 말하려면

모자라리라

백만 년 또 수백만 년도 






어느 새의 그림을 그릴려면 Pour faire le portratit d'un oiseau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릴 것

다음에는 새를 위해

뭔가 예쁜 것을 

뭔가 단순한 것을

뭔가 예쁜 것을

뭔가 쓸모 있는 것을 그릴 것

그 다음엔 그림을

정원이나

숲이나

혹은 밀림 속

나무에 걸어놓을 것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고 ... ...

때로는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여러 해가 걸려서

결심하기도 한다

실망하지 말 것

기다릴 것

필요하다면 여러 해를 기다릴 것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것은

그림의 성공과는 관계 없는 것

새가 날아올 때

혹 새가 날아오거든

가장 깊은 침묵을 지킬 것

새가 새장에 들어가길 기다릴 것

그가 새장에 들어가거든

살며시 붓으로 새장을 닫을 것

그리고 

차례로 모든 창살을 만들되

새의 깃털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할 것

그리고는 가장 아름다운 가지를 골라

나무의 초상을 그릴 것

푸른 잎새와 신선한 바람과

햇빛의 가루를 또한 그릴 것

그리고는 새가 결심하여 노래하기를 기다릴 것

혹 새가 노래 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쁜 징조

그림이 잘못된 징조

그러나 새가 노래하면 좋은 징조

당신이 사인해도 좋다는 징조

그렇거든 당신은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 뽑아서

그림 한구석에 당신 이름을 쓰라 





절망이 의자 위에 앉아 있다 Le de'sepoir est assis sur un banc 




광장의 의자 위에

어떤 사람이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부른다

외안경에 낡은 회색 옷을 입은 그는

담배를 피우며 앉아 있다

그를 바라보면 안 된다

그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냥 스쳐야 한다

그가 보이거든

그의 말이 들리거든

걸음을 빨리 하여 지나쳐야 한다

혹 그가 신호라도 한다면

당신은 그의 옆에 앉을 수 밖에 

그러면 그는 당신을 보고 미소 짓고 

당신은 참혹하게 고통 받고

계속 그 사람은 웃기만 하고

당신도 같은 웃음을 웃게 되고

웃을수록 당신의 고통은 더욱 참혹하고

고통이 더 할수록 더욱 어쩔 수 없이 웃게 되고

당신은 거기 의자 위에 

움직이지 못하고 미소 지으며 

주위에는 아이들이 놀고

사람들 조용히 지나가고 

새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가고

당신은 의자 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당신은 안다 당신은 안다

이제 다시는 이 아이들처럼 

놀 수 없음을

이제 다시는 조용히 

이 행인들처럼 지나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이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날아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