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뉴욕삼부작, 폴 오스터

지하련 2004. 9. 2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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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지음), 한기찬(옮김), 뉴욕 삼부작 The New York Trilogy, 웅진출판, 1996 초판2쇄.






어둠 속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밀어 넣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완전히 잊어버렸을 때, 내 실수와 과오, 내 조그마한 상처, 또는 내 고귀했던 사랑마저도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을 때, 그렇게 되었을 때, 왜 누군가가 날 찾는 것일까.

소설은 누군가를 계속 찾아 다니다 그 누군가를 잊어버리는 방식을 택한다. 실은 오래 전부터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졌고 그것을 그 스스로 선택했으며 그렇게 남은 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제 날 찾는 따위의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래 전부터 세상은 나의 것이 아닌 타인들의 것임을. 그러니 불필요한 사람은 사라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리고 그 사람 대신 언어만 남아 허공을 떠돌게 된다.

노트에 빼곡히 쌓인 언어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우고 자신을 감추고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할 땐 쓰레기통에 들어가버린다. 그렇게 자신을 지우는 것. 어쩌면 상처 입은 우리들의 목적이 아닐까. 이미 상처 입은 채로 태어났으므로 적어도 우리에겐 우리 자신을 지울 권리가 있는 건 아닐까.

참 재미 없는 소설을 읽었다. 팬쇼만 마음에 들고 나머지들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제 꿈을 꿀 시간이다. 나를 지우는 꿈을 꿀 시간. 이 소설을 다 읽고 눈을 감고 나를 지우는 꿈을 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