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고종희

지하련 2004. 10. 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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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희(지음),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한길사(2004년 초판 1쇄)




오랜만에 국내 저자가 쓴 꽤 좋은 미술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르네상스 시대로 일컬어지는 14세기에서 16세기에 작품 활동을 했던 여러 화가들의 초상화만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서양미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사람은 많아도 특정 시대나 특정 장르에 대한 책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꽤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르네상스 시기의 초상화는 ‘본질적으로’ 권력의 양식이다. 이는 종교 권력이 물러나고 세속 권력이 이를 대체해 나가는 시기에 일어나는 일로서 연대기적으로 초상화 양식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아직까지 로마의 영향권 속에 있었던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를 그린 산 비탈레 교회의 모자이크화를 떠올린다면, 그 모자이크화 속에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신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이후 거의 모든 작품들 속에서 예수나 성모 마리아, 또는 성인은 언제나 화면의 중앙에 위치하게 된다. 이러한 중세의 성상화 전통 속에서 르네상스 초상화는 시작한다.

저자는 예술가 별로 정리하여 서술하고 있으며 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로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연구서적이라고 하기에는 전문적이지 않으며 르네상스 초상화 입문서라고 하는 편이 적당할 것이다.

이 점에서 불만이 있다면 초상화 양식의 변천이 지니는 사상사나 사회사적 의미에 대한 설명은 없어 초상화 양식에 대한 미술사적 이해를 구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개별 화가, 그가 그린 작품에만 집중하여 서술하는 방식이 미술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이들을 위한 우호적인 방식이긴 하지만, 초상화가 가지는 깊은 의미를 제대로 닮아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연 이런 책을 낼 생각을 가진 서양미술사 연구자가 몇 명쯤 될까. 하긴 출판사가 나설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좀 제대로 된 연구서는 온통 번역서들 밖에 없다. 안타까운 인문학의 현실이다.

이 책 319쪽을 보면 ‘독일의 가톨릭 구교권에 뒤러가 있었다면 프로테스탄트 신교권에는 루카스 크라나흐가 있었다’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뒤러가 루터를 반대하지 않았다. 이는 에라스무스 전기를 읽어본다면 알브레히트 뒤러와 에라스무스 사이에 오고간 편지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뒤러는 에라스무스가 루터를 반대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했고 루터를 인정하고 추종한 것으로 나온다.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혹시나 싶어 덧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