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지하련 2018. 7. 1. 15:48


지식인의 표상 Representations of the Intellectual 

에드워드 사이드(지음), 최유준(옮김), 마티 



사진 출처 - http://www.h-alter.org/vijesti/remembering-edward-said 



나이가 들어 새삼스럽게 애정을 표하게 되는 작가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다. 대학 시절, <<오리엔탈리즘>>을 읽었으나, 그 땐 그 책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인문학은 나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건 이 세상과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서야 새삼스럽게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으며 감탄하게 되고 당연한 일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사이드는, 어쩌면 그의 인생 전체가 20세기의 거대한 갈등 한 가운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지적 역량과 방대함일 것이다. 아마 서구 지식인들 대부분이 에드워드 사이드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이 책의 계기는 1993년 영국 BBC 방송의 리스 강좌 Leith Lectures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인이었던 그에게(영국 BBC 리스 강좌에 나왔던 미국인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팔레스타인의 권리 투쟁에 적극적이었던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강좌의, 그리고 이 책의 존재 의의를 부각시켰다. 


"모든 사람이 지식인이며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사회에서 지식인의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 그람시, <<옥중수고>> 중에서 (19쪽 인용) 


이 책은 지식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지식인에 대해 정의내리고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사고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지식인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다. 또한 그 스스로 현실 정치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했던 지식인으로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분명하고 확고한 어조로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 후반부에 리처드 크로스만의 <<실패한 신The God that Failed>>를 인용하며 지식인들의 변절을 언급할 때는, 그러한 변절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가를 기술할 때는 고통스러움까지 느껴졌다. 


결국 중요한 것은 표상하는 인물로서의 지식인입니다. 즉 어떤 종류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는 사람, 그리고 온갖 종류의 장벽을 극복하고 청중들에게 명확하게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지식인이란 대화를 하건, 글을 쓰건, 가르치건 텔레비전에 출연하건, 표상의 기술을 소명으로 삼는 개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명을 공적으로 인지 가능하며 책임과 위험, 대담함과 소심함의 양면을 모두 아우르는 만큼 중요합니다. (27쪽) 


다소 무책임하고 경솔해보일지 모르지만, 주변성이라는 조건은 남의 일을 망치고 동료들을 불안하게 만들 것을 염려와 언제나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식인이 실제의 망명 상태와 같이 주변화된 자, 길들여지지 않는 자가 되는 것은 권력자보다는 여행자에 가깝고, 관습적인 것보다는 임시적이고 위험한 것에 가까우며, 현 상황에 주어진 권위보다는 혁신과 실험에 가깝게 반응한다는 의미입니다. 망명자적인 지식인의 역할은 관습의 논리에 따르지 않고 대담무쌍한 행위에, 변화를 표상하는 일에, 멈추지 않고 전진해가는 일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77쪽)


오늘날의 지식인은 아마추어가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아마추어란, 한 사회의 분별력 있고 사려 깊은 구성원이 되고자 한다면 가장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행위에 있어서조차 그 행위가 자신의 국가와 관련되고 그 국가의 권력과 관련되며 다른 사회와의 상호작용 방식은 물론 자국 시민들과의 상호 작용 방식과 관련될 때, 그 핵심에서 도덕적인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마추어로서 지식인의 정신은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단순히 직업적인 일상에 들어가 이를 훨씬 더 생기 있고 급진적인 무언가로 변모시킬 수 있습니다. 그저 해야 할 일로 여겨지는 것을 묵묵히 수행하는 대신, 그것을 왜 해야 하며 그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며 그것을 어떻게 하면 개인적 기획과 독창적인 사고에 다시 접목할 수 있을 지 물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98쪽) 


자기 자신에게 가해지는 위협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한때 제쳐두었던 것을 재발견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려운 일입니다. 지식인이 되는 일의 가장 어려운 국면은, 제도에 맞게 경직화되거나 정해진 체제나 방법에 따라 기계적인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직업과 개입을 통해 주장하는 것을 스스로 표상하는 일입니다. (138쪽) 


책 내내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어쩌면 그의 삶 전체가 그런 궤적을 그렸던 건 아닐까. 미국인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온전한 팔레스타인인도 아니었으며 더구나 아랍인은 더욱 아니었다. 그의 부모님 모두 기독교도였으며(하지만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으로 오자 유대인이 아니었던 그들 가족은 쫓겨날 수 밖에 없었다), 아랍어와 영어를 섞어 사용하였다. 그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은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으며, 결과적으로 주변인으로서, 망명 지식인으로서, 그 어떤 독단적 체계로부터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었을 수 있게 만든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그를 <<오리엔탈리즘>>으로 유명한, 그저 탈식민주의 이론을 이야기한 학자로 국한시키기에는 그의 지적 역량은 놀랍기만 하다. 그는 탁월한 피아니스트들 중 한 명이었으며, 아마 아도르노 이후 클래식 음악에 조예 깊은 학자이면서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과 함께 클래식에 대한 책까지 낸 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나이가 들수록 감탄하게 되고 공감하게 되는 학자이기도 하다. 


책을 사놓고 초반만 조금 읽어둔 채 몇 해를 보냈다. 아마 아래 문단에서 가슴이 먹먹해져 읽기를 멈추었던 듯 싶다. 보편성이란 무엇일까. 제주도에 피신해온 예멘 난민들의 기사를 읽으며 우리 마음 안에 굳건하게 자리 잡은 벽을 느낀다. 그런데 한국에도 지식인들의 사회라는 게 존재하는 것일까. 살짝 고민해보게 된다. 내가 보기엔 예멘 난민 문제에 있어서 가장 호소력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그 잘난 한국의 지식인들이 아니라 배우 정우성이었으니까. 


보편성이란 우리의 출신 배경, 언어, 국적이 타자의 존재로부터 자주 우리에게 보호막이 되어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확실성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성은 또한 대외 정책이나 사회 정책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인간적 행위에 대한 단일한 규준을 찾아내고 이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야기된 적의 침략에 대해 비난한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 정부가 더 약한 집단을 침략할 때 똑같이 비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식인은 자신의 언행을 규정하는 어떠한 법칙도 알지 못한다. 세속적 지식인들에게 확고한 인도자로서 경배하고 숭배해야 할 어떤 신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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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표상 - 10점
에드워드 W. 사이드 지음, 최유준 옮김/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