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기로에 선 자본주의, 앤서니 기든스/윌 허튼

지하련 2005. 10. 27. 16:42

기로에 선 자본주의
앤서니 기든스/윌 허튼(편저), 박찬욱/형선호/홍윤기/최형익(옮김), 생각의나무, 2000년



‘자본주의는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라고 질문을 하면 과연 몇 명쯤 ‘좋다’라고 답할까. 그렇다면 나쁜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매우 편파적인 책이다. 윌 허튼은 분명한 어조로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고 앤서니 기든스도 그것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습게도 이 책에 정답은 없다. 아마 정답이 나와있는 책은 없을 것이고 설사 있다고 하더라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먹어치워 버리는 현대 자본주의가 그 정답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공부는 좌파, 또는 중도 좌파의 시각이 아닌 우파의 시각에서 자본주의를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윌 허튼은 ‘사회주의를 자유와 평등, 우애의 가치를 주장하고자 하는 윤리적 가치 체계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지만, 보수 우파도 이와 비슷하게 자유주의를 윤리적 체계로 이해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실은 ‘윤리적 가치 체계’란 표현은 조금은 엉뚱해 보여서 허튼의 생각을 희석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의 내용이야 다들 예상하다시피 20세기 말을 휩쓴 동아시아와 남미의 금융 위기와 IMF 체제,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화와 정보화 등에 대해 다루고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우리의 공동체와 삶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다 읽고 난 다음 자본주의가 기로에 서 있다는 걸 알기에는 다소 부족해 보이지만, 문제가 많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만한 책임에 분명하다. 특히 알리 러셀 혹스차일드(Arlie Russell Hochschild)의 《보살핌 사슬과 감정의 잉여가치》는 꼭 읽어볼 필요가 있는 글이라 생각된다. 그 외 현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해 놓고 있다.


하지만 그 세력을 확장해가는 자본주의 속에서, 그리고 우리가 먹고 산다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결부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이런 류의 책이 얼마나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의문이다. 과연 변화될 수 있을까. 아무리 궁리해봐도 허탈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연일 매스미디어에서, 국회에서, 술자리에서 재벌 기업을 욕하더라도 자기 아들이나 딸이 재벌 기업에 입사하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시대에, 그리고 금융권에서 화폐 경제 끄트머리에 서서 하루에도 수십억, 수백억씩 관리하고 있다면 자랑할 만한 하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혹시 우리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만 너무 귀가 열려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자본주의를 벗어날 힘도, 거역할 힘도 없다. 그럴 바에는 이 잘못된 자본주의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 시각에서 보자면, 이 책은 다소 힘이 떨어져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