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문학

미친 사랑(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하련 2019. 7. 14. 01:51



미친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지음), 김석희(옮김), 시공사 






아찔아찔 하기도 하고, 측은 하기도 하고, 동시에 나오미같은 이를 만나고 싶기도 하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은 상당한 수작이면서, 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동시에 불쾌하며, 음울하고, 관능적이다. 소설은 적절한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한 남자의 터무니없는(바보 같은) 사랑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마 이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면서 동시에 문학적 강점이 될 것이다. 특히 성적 페티시즘은 군데군데 그 모습을 드러내며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퇴폐적으로 몰아간다. 고려대 김춘미 교수는 아예 “장장 오십오 년 동안 오로지 여자의 흰 살갗과 발이 가져다 주는 희열 만을 그린 작가”라는 평을 하기도 한다. 


<<미친 사랑>>이 당시에 일으킨 반향은 엄청나서, '나오미즘'이라는 유행어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나오미 스타일'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간토대지진은 결과적으로는 사회적 변동이기도 했다. 그것을 계기로 도덕과 풍속에 대해 평소 위화감을 품고 있던 젊은이들은 모더니즘을 지향하게 된다. <<미친 사랑>>은 교묘히 그런 풍조에 영합했다. 거기에 이 소설의 시대성이 있다. 그리고 인간의 끝없는 재미, 즉 인간성의 미지의 분야는 영원히 무한하다는 것을 읽을 때마다 힘차게 말해주는 데 이 소설의 영원성이 있다. (336쪽, 역자해설) 


하지만 나는 대단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스토리는 충분히 예상되었고, 결국 한 남자는 한 여자에게 속박당하게 된다. 그러나 파국에 이르지 않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사랑을 지킨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 


확실히 요즘 방식은 아니다. 적절한 선에서 멈춘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것은 이 부부의 더 먼 미래다. 결국 파국은 올 것이기에. 이 점에서 1920년대 소설이다. 서양적인 방식을 무분별하게 쫓아갈 수 밖에 없음을 암묵적으로 은유화하면서 그것의 곤혹스러움이 묻어난다. 어쩌면 20세기 초, 서양의 모더니즘을 그것을 수용해야 하는 동양의 입장에서는 서양의 그것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바보같은 사내의 사랑으로 이야기하지만, 실은 어떤 상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주인공 조지가 나오미를 소유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역전되어 그가 (스스로) 나오미의 소유가 된다. 소설 내내 관능적인 나오미에 대한 서술로 자신의 사랑을 정당화하며 방어하며 그 스스로 나오미로부터 헤어나올 수 없다고 하지만, 실은 애초부터 그것을 원했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나, 사랑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동경과 소유, 집착과 갈망, 어리석음과 포기에 대한 은유다. 애초부터 잘못된 시도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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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읽기 시작하면 금세 다 읽게 될 것이다. 이 소설의 원제는 <<치인의 사랑>>이나, 시공사 번역본에서만 <<미친 사랑>>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당히 흥미로웠으나, 대단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도리어 김석희 선생의 정성이 더 돋보였다. 1920년대 일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그 많은 역주를!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은 상당히 많이 번역되어 있으니, 관심 있다면 찾아서 읽으면 좋을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에만 빠져 있었는데, 준이치로도 상당히 흥미롭긴 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일본 소설에 대한 리뷰를 올리자니, 거참. 일본의 어떤 부분은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렵다. 특히 정치와 외교는 뭐랄까, 일본의 인문학자들이 보여주는 뛰어난 성과와는 정반대라고 할까.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래잡이에까지 나선다고 하니, 황당하다. 





미친 사랑 - 8점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석희 옮김/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