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근황, 그리고 내일

지하련 2020. 2. 9. 23:47




계단을 올라갈 때 오래된 나무 조각들과 내 낡은 근육들의 사소한 움직임으로 얇게 삐걱이는 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이젠 이런 종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없다. 나무 계단은 이제 없다. 만들지도 않는다. 나무 바닥이나 나무 계단을 뛰어가다가 발바닥에 나무 가시가 박히는 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어제는 사라졌다. 한 땐 당연한 일이, 익숙했던 사물이 지금은 낯선 것이 되거나 아련한 것이 된다. 


그렇게 나도 요즘, 종종, 가끔 그렇게, 그냥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가장한 어떤 부재.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스스로에게 공포와 두려움, 끝없는 연민을 느끼곤 한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지만, 실제로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이렇게 사는 것이 옳은 지 조차 모른다. 


아직도 세상은 잘 모르겠지만, 세상의 모든 것들이 궁금하진 않다. 한 때 세상 모든 것이 궁금했으나, 지금은 전혀. 애시당초 나는 세상을 몰랐고 세상도 나를 몰랐다. 나는 그녀를 몰랐고, 그도 몰랐다. 그러니 원래 있던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한 땐 그녀가 나를 알아주길 바랬으나, 원래부터 나도, 그녀도 몰랐던 것이니, 이상할 게 전혀 없다.  


다만, 그저 그립고 외로울 뿐이다. 


우연히 유희경의 시를 읽었고, 서점에서 한 권 샀다. 당신의 자리... 이런 시는, 적당히 좋다. 그래, 그랬지. 그 땐 나도 그대 옆으로 돌아가면서 늘 없지만, 늘 있는 사람이고 싶었지. 


늘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다. 내일이란, 다시 어제를 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대를 알기 전 그 날로. 내일이란 어제 이전의 모습으로 가는 것이며, 어제의 희미한 그림자일 뿐, 끝내 오지 않을 어떤 순간이다. 결국 내일이란 없고 어제도 없는, 오직 현재만 있는, (일종의) 절망. 그 자리에 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