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비즈

시그널Signals, 피파 맘그렌

지하련 2020. 10. 2. 22:40



시그널 Signals 

피파 맘그렌Pippa Malmgren(지음), 조성숙(옮김), 한빛비즈



가끔 아마존에 들어가 서평을 읽곤 한다. 대단한 찬사를 받은 책이 너무 형편없거나 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매우 흥미롭게 읽은 책일 경우에 해당한다. 피파 맘그렌의 <<시그널>>은 최근에 읽은 책들 중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터라, 일반 독자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대체로 높은 평점을 주고 있지만, 매우 낮은 평점을 주기로 했다. 


이 책 <<시그널>>은 'How Everyday Signs Can Help Us Navigate the World's Turbulent Economy'라는 부제가 붙어있다(번역서에서는 '일상의 신호가 알려주는 격변의 세계 경제 항해법'). 하지만 알라딘 리뷰에 실린 것처럼 '정치이야기가 대부분'이라는 생각일 들 정도로 정치 이야기가 많다. 결국 경제 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은 매우 정치적인 과정이거나 실제 정치인들이 하기 때문일 텐데, 이 책은 너무 많은 영역까지 인용하며 서술하다 보니, 경제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은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일상의 신호'를 통해 경제를 보는 것은 이 책의 초반에만 등장할 뿐이다. 그러니 책의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선택해 읽는다면, 실망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 경제가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님을 알고 있을테지만, 그 영향이 우리 일상을 얼마나 지배하는가에 대해선 잘 모른다. 


“달러는 미국의 통화이지만 당신들의 문제이다.”
- 존 코널리(John Connally, 닉슨 행정부 재무부장관) (249쪽에서 재인용) 


가령 미국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미연방준비제도는 ‘저금리와 양적 완화’를 하고 '핫머니가 미국경제에 투입'된다고 치자. 월가의 트레이더에게는 이 돈은 '공짜돈'이다. 그리고 이 돈으로 투자를 한다. 

 

비용이 없는 돈이므로 트레이더는 찾을 수 있는 한 가장 위험한 도박을 찾아내 거기에 돈을 걸어야 한다. 이런 도박 대상이 다른 통화권이나 다른 나라의 투자 상품일 때 그것을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라고 한다. (219쪽) 


결국 이러한 투자로 인해 미국 경제가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경제가 핫머니의 투기장이 되고 세계 경제의 리스크는 높아진다. 전세계가 마주한 세계경제는 각 나라별로 각기 다른 문제를 만들고 있다. 피파 맘그렌은 '사회계약'이라는 고전적 개념을 인용하며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해결책을 마련할 수 밖에 없으며, 이로 인해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사회계약의 파기만이 아니라 사회계약끼리의 충돌 역시 우리 시대를 압박하는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과중한 채무 부담과 쉬운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국가는 사회계약을 충돌시키는 쪽으로 움직일 공산이 크다. 독일이 시민과 맺은 사회계약에서는 채무 문제의 해결책으로 인플레이션을 철저히 배제한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사회계약은 인플레이션을 채무 문제의 해결책으로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사회계약의 충돌이 유럽 연합의 심장부에 매복해 있다. 인플레이션이 낮을 때는 사회계약의 충돌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높아지는 인플레이션에 유럽연합은 언제 쪼개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롭다. (15쪽) 


이는 인플레이션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언급된다. 


미국의 최대 채권국인 중국의 시각에서 본다면 마이너스 금리는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미 효과를 거두고 있으며 그 효과도 꽤 좋은 편이다. 중국은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이용해 채무불이행을 행한 역사가 아주 길다고 보고 있다. 중국의 말에 따르면, 미국이 독립혁명 때 빌린 막대한 채무를 ‘갚은’ 수단은 인플레이션이었다. (225쪽)


저축자에게 벌금을 물리고 투기를 권장하는 것이 마이너스금리의 목표이다. 저축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정부는 국민의 은행계좌에서 직접 돈을 빼감으로써 경제에 투자하지 않는 저축자를 효과적으로 처벌할 수 있다. 이로써 부동산이나 실물자산, 증시에 돈을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부동산과 주가가 올라가게 된다. (223쪽) 


하지만 금리란 원래 아래의 정의와 같다. 


금리는 차입자와 여신기관의 이해관계에 균형을 맞추는 일종의 민주적 도구이다. (181쪽) 


그러나 이것은 한 국가 안에서만 해당되는 정의일 것이다. 이것이 다른 화폐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전혀 다르게 작동된다.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인플레이션도 생기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문제는 임금이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신흥시장 노동자는 나날이 오르는 물가상승에 맞춰 임금도 올려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면 시중에 도는 돈도 늘어나기 마련이다. (… ….) 이것은 ‘임금-물가 상승의 악순환 wage price spiral’이라고 한다. (207쪽) 


결국 세계 경제는 인플레이션, 혹은 디플레이션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 뻔해 보인다.  


부채 디플레이션debt deflation: 소비자가 빚을 줄이기 위해 소비를 줄인 결과 내수가 위축되고 경제 성장의 추동력이 사라지는 현상 (407쪽)


코로나 사태로 인해 세계 경제는 곤두박질 치고 있다. 한 쪽에선 양적 완화를 하고 있으나, 생산 감소와 소비 위축으로 인해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지도 모른다. 


“1816년에 영국의 순부채net public debt는 국내총생산의 240%였다. 프랑스와 125년 동안 전쟁을 치르면서 남은 재무적 유산이었다. 이 압도적인 채무 부담 후에 벌어진 경제적 참사는 무엇이었을까? 산업혁명이다.” - 마틴 울프Martin Wolf(<파이낸셜 타임즈> 편집자)  (465쪽에서 재인용) 


산업혁명이라... 지금 이 시대에 그것이 가능할까? 실은 우리는 정말 어리석은 행동들을 반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스라엘 학계에서 286개 페널티킥을 분석했더니 골키퍼가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몸을 날리는 경우는 94%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골키퍼가 가운데를 지키고 있을 때 공을 막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골키퍼는 왜 거의 매번 한쪽으로 몸을 날리는가? 학계는 골키퍼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공을 놓친 것으로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가정했다. 한 쪽으로 몸을 날리면 공을 막을 가능성은 줄지만, 과감히 움직였다는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그들은 무언가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대표 연구자 중 한 명은 마이클 바엘리Michael Bar-Eli는 이렇게 설명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그들은 우물쭈물하다가 무능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 학계의 ‘정상 골키퍼들의 행동 편향: 페널티킥 사례’라는 2005년 연구. (127쪽에서 재인용) 


“우리 시대의 가장 기이한 특징 중 하나는 대단히 중요한 선택을 … 무엇이 그 선택을 좌우하고 무슨 결과가 생길 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지식은 전혀 갖추지 못한 소수가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 찰스 퍼시 스노 Charles Percy Snow (120쪽 재인용) 


피파 맘그렌은 경제학, 혹은 경제학자들의 오만을 지적하며, 그들은 세계 경제에 대해 제대로 된 예측을 하지 못하며 이 위기를 극복할 혜안을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은연 중에 주장한다. 


“패닉은 자본을 파괴하지 않는다. 다만 가망없을 정도로 비생산적인 작업을 드러냄으로써 자본이 얼마나 심하게 망가졌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 존 밀스John Mils (427쪽에서 재인용) 


지금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시대가 아니다. ‘가진 자’와 ‘많이 가진 자’ 그리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의 시대이다. 다른 경제 체제가 처참하게 무너졌고, 유일하게 남은 길은 자본주의뿐이다. 하지만 이것을 올바로 정의하려면 두 배는 더 노력해야 한다. 저축자 이익과 투자자 이익 사이의 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 개개의 민간 부문이 자동적으로 또한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고, 반대로 다른 부문은 견딜 수 없는 피해를 입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449쪽) 


그리고 그녀가 선택하는 해결책은 '행동'이다. 


“앞날을 내다보며 점을 연결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뒤를 돌아보며 점을 연결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그 점들이 미래에는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믿는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본능이나 운명, 인생, 인연 같은 것들 말이죠. 이 점들이 훗날 연결될 것이라고 믿기만 해도, 잘 닦인 길을 벗어나게 되는 순간이 왔을 때 자신감을 가지고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차이를 만들 것입니다.” - 스티브 잡스,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 중에서(475쪽에서 재인용) 


이러한 스스럼없는 태도가 우리를 “잘 닦인 길에서 벗어나도록” 이끈다.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말했다. “사회에서 괴짜의 양은 대체적으로 그 사회가 가진 천재와 정신적 활력, 도덕적 용기의 양에 비례한다. 괴짜가 되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그토록 적다는 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위험이다.” (476쪽) 


"1온스의 행동이 1톤의 이론보다 낫다" - 에머슨 (476쪽에서 재인용)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은 대개 능력이나 아이디어의 뛰어남으로 갈리지 않는다. 그보다는 아이디어를 시험해보고 계산된 위험을 감수하고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느냐로 갈린다." - 앙드레 말로 (483쪽에서 재인용) 


이러한 행동이나 용기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는 그녀도 모른다. 다만 위기를 깰 수 있는 건 이론이 아니라 어떤 행동임을 그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너무 신호같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다만 2016년에 출간된 책인지라 .... (그래서 경제나 정치 분야 책은 신간 위주로 계속 읽어야 한다. 그 동안 신경써서 책을 읽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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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책을 읽으면서 옮겨적은 글의 일부다. 


민물freshwater 학파 

 - 경제 위기의 원인을 정부로 돌리는 학파. 시카고 대학 중심. 

 “민물경제학파는 기본적으로 신고전파 순수주의자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모든 가치 있는 경제 분석은 인간이 합리적이고 시장이 제대로 작용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폴 크루그먼) 


바닷물saltwater 학파

 - 시장 과잉을 적절히 제한하지 못하는데 대해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학파. 하버드/프린스턴 대학 중심

 “그들은 완전 시장이나 완전한 합리성에 대한 가정에서 벗어나, 불완전성을 추가하고 경기 후퇴에 대한 케인즈 견해를 수용한다. 바닷물 경제학파는 경기 후퇴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개입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폴 크루그먼) 

(121쪽에서 정리) 


세계 경제는 최종적으로 강력한 두 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 하나는 부와 GDP에서 세금을 걷어 재분배하는 국가의 힘이고, 또 하나는 부와 GDP를 창출하는 개인노동자 또는 기업가(아니면 기업가 집단)의 힘이다. (165쪽) 


“복리는 세계 8번째 불가사의이다. 복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복리로 번다. 복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복리로 대가를 치른다.” - 아인슈타인 (170쪽에서 재인용)


모든 중국 ‘어선’은 중국인민해방군의 보호를 받는다. 중국이 어선을 군사목적으로 사용한 것은 역사가 깊다. 오늘날 많은 중국 어선은 인민해방군 해군과 똑 같은 회색으로 선체를 칠했으며 그냥 보기에는 조업장비를 갖춘 어선이지만 첩보 수집 장비도 갖추고 있다. (302쪽) 




Pippa Malmgren (1962 ~ )






시그널 - 10점
피파 맘그렌 지음, 조성숙 옮김/한빛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