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비즈

디플레 전쟁, 홍춘욱

지하련 2021. 2. 20. 10:47

 

 

 

디플레 전쟁

홍춘욱(지음), 스마트북스 

 

경제(학)에 대한 책을 많이 읽으려고 노력 중이나 쉽지 않다. 1년에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50권 내외. 그 중에 딱딱하고 어려운 인문학책이 끼어있으면 40권도 어렵다. 1권을 읽는데, 1달 이상 걸리는 책을 손에서 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은 참 오래만에 읽는 경제서적인 셈이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선 다양한 이들(사람일수도 있고 저널일수도 있다. 한국 저널은 거의 없고 외국 저널이 대부분이긴 하지만)의 추천으로 구입하기도 하고 저자를 보기도 한다. 이 책은 저자에 대한 신뢰로 구입했다. 그냥 믿고 읽는 저자들 중의 한 명이며, 국내에서는 내노라하는 투자전문가이기도 하다(그의 블로그를 추천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구나). 이 책은 디플레이션에 대해서 적고 있는데, 의문은 '왜 디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는가' 그리고 '디플레이션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이 구상되기 시작한 2019년, 그리고 쓰고 있는 동안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었고 코로나가 절정으로 향해가던 2020년 4월에 출간되었다. 이 때만 해도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기사가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다(아마 인플레가 끝나고 디플레로 갈 지도). 실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궁금해 관련 서적을 검색하던 차에 이 책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제목에 인플레라는 단어가 들어간, 읽을 만한 책은 거의 없어서 이 책을..

(혹시 추천할 만한 책이 있다면 추천을...)  

 

저자는 머리말에 이렇게 적고 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그리고 워싱턴 인근의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 등 주요 시설에 대한 연쇄적인 테러가 벌어지며 일상적인 경제활동이 전면 중단되었는데도, 어떻게 경제성장이 회복되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정책'과 '전쟁'이었다. 미국의 연방제도이사회, 즉 중앙은행이 정책금리를 1%까지 인하하고, 부시 정부가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로 대규모 병력을 파견한 것이 경기회복의 기폭제가 되었던 것이다. 즉 중앙은행이 돈을 풀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고,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설정한 것이 경제의 성장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7쪽) 

 

그러면서 '코로나 19 쇼크, 경기가 회복되려면 - 무엇이든 지금 당장 시행하라'라고 말한다. 

 

"정부가 돈을 그렇게 풀어도 인플레이션이 생기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금리가 급등하면 정부 재정이 망가지는 것은 아닐까?"

일리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미 물가가 상승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보다는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Deflation)의 압력이 우세한 국면에 접어들었고, 이번 코로나 19 사태가 이런 흐름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코로나19 쇼크로 인해 미국 등 주요 선진국 경제의 공장설비, 그리고 노동력의 과잉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12쪽) 

 

이 책이 나온 건 작년 초반이다. 벌써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다양한 정책들이 각 나라마다 시행되었고 너무 많은 돈이 풀렸다. 지금 저자에게 물어본다면 다르게 판단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주장이나 견해가 틀렸다고 해서 비난할 필요 없다. 적어도 작년 4월 시점에서는 저자의 판단이 훨씬 타당했으니까 말이다. 다만 최근의 인플레 경고 목소리는 너무 돈이 많이 풀렸다는 것도 있지만, 백신 접종율의 상승, 이에 따른 감염자 수의 하락, 그리고 1년 이상 소비를 하지 못한 이들의 반발 소비로 인한 심리적 기대감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닐까(그래서 다음에 읽을 책은 인플레이션과 행동 경제학 책이 될 것같다). 

 

디플레가 왜 무서운가?

(...) 물론 생필품 물가가 오르지 않은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경제 전체로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 첫째, 디플레는 결국 '장기불황'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 / 둘째, 소비와 투자가 연쇄적으로 얼어붙게 된다. (14쪽 ~ 15쪽)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많았다. 지금 시점에서 이 책을 읽으라고 하기에는 다소 애매할 수도 있지만, 디플레이션에 대한 책도 많지 않기 때문에 궁금하다면 읽는 것이 좋다. 경제 흐름은 돌고 도는 것이니. 

 

디플레이션은 시장의 가격이 오르지 않는 것이니, 물가 상승 요인이 억제되고 노동자의 임금도 오르지 않는다. 실제로도 오르지 않았다. 일부 대기업이나 CEO의 급여만 올랐을 뿐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생산되는 공산품들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국 노동자의 임금도 전반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니, 이러한 역할을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일이고 중국 경제 상황도 예전만 못하다. 중국 정부도 현재까지 성장이 계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제조업 2025'같은 정부 주도형 정책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중국의 '제조업 2025' - 학습곡선이 매우 가파른 산업 육성

(...) 여러 산업이 후보에 오르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생산단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산업, 즉 학습곡선이 매우 가파른 산업이다. 실제로 중국 당국은 반도체와 전기차 등 자본투자의 비중이 높으면서 생산성 향상 속도가 빠른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69쪽) 

 

학습곡선이 완만한 산업은 초반에는 높은 학습곡선을 보여주며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올라가지만, 일정 수준에 이르면 생산성이 정체된다. 이런 산업은 대체로 새로운 경쟁자에 매우 취약하다. 책에서는 면방직 공업을 예로 들고 있지만, 전통적인 제조나 유통에 여기에 속할 것이다. 학습곡선의 차이는 어쩌면 우리가 이미 일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오프라인 상거래와 온라인 상거래을 통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미증시에 상장하는 쿠팡의 가치는 50조원 정도로 평가받는데, 이 금액은 한국의 전통적인 유통 강자들인 신세계나 롯데를 뛰어넘는 금액이다. 미 증시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하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차이를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마존은 세상의 가격을 어떻게 바꾸나.

가격 조정 주기가 빨라진다. / 가격동질화가 가속화된다. (80쪽)

 

온라인에서는 서로의 가격이 노출된다. 오프라인 매장의 가격을 확인하려면 일일이 전화를 하든가 직접 가서 확인해야 된다. 하지만 지금은 경쟁사의 웹사이트에 가서 확인하거나 가격 비교 사이트, 아니면 아예 자동화된 스크래핑(web scraping, 또는 screen scraping)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가격은 바로바로 조정되고 결국 가격은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이것도 물가의 상승을 막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도 여기에 한 몫하고 있다(그런데 이 불평등은 정말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지금 읽고 있는 리처드 윌킨스과 케이트 피킷의 <<평등이 답이다The Spirit Level>>은 이 불평등에 대해 진지하고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다).

 

숙련 편향적 기술진보는 어떻게 실질임금 상승을 억누를까?

'숙련 편향적 기술진보(Skill-biased Technological Change, SBTC)'는 1990년대를 전후해 발생한 기술혁신으로 인해 전통적인 일자리들이 사라지는 반면, 정보통신 분야에서 새로운 산업이 왕성해지면서 나타난 '노동시장의 양극화' 현상을 말한다. (94쪽) 

 

아마 한국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업종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은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 일부 대기업의 성과로 인해 좀더 과감한 정책이나 노동자의 반발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또한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의 문제는 더 심각해 보인다. 

 

이래저래 한국도 인플레보다는 디플레를 걱정해야 되는 시기라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잠재 GDP는 한 나라의 경제가 보유한 인력과 장비를 이용해 달성 가능한 최대의 성과로 볼 수 있으며, 실제 GDP에서 잠재 GDP를 뺀 것이 바로 GDP갭이다. 따라서 GDP갭이 플러스를 기록하면 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고, 반대로 GDP 갭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면 물가가 오르기 어려운 이른바 '디플레'의 시대가 펼쳐지게 된다. 

문제는 한국이 2012년 이후 GDP 갭이 지속적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데 있다. 이렇게 보니 경제 전체의 인플레 압력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 (36쪽 ~ 37쪽) 

 

그리고 디플레에 들어가면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의 경우, 통화 정책 등을 통해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시도라도 할 수 있지만, 디플레이션은 ... 

 

디플레 국면에 진입하면 '경제를 정상 수준으로 돌려놓기' 어려운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통화정책이 무력화된다!

먼저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통화정책의 무력화 문제 때문이다. 이는 경제학계에서 '제로금리 한계(Zero Rate Lower Bound)'라고 하는 이슈이다. '제로금리한계'란 중앙은행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책 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제로금리 수준이 하한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

디플레의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통화정책의 무력화보다 더 심각한 두 번째 위험요인은 '디플레 악순환(Deflation Spiral)'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의 국민 대다수가 '앞으로 물가가 하락할 것'이라는 디플레 기대심리가 높아지면 자연스럽게 소비를 미룰 것이다. 어차피 가격이 계속 떨어질 텐데 굳이 지금 소비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소비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기업의 실적이 악화되고 고용 및 투자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165쪽) 

 

그리고 디플레는 아니지만 디플레 비슷해보이는 이런 시기에 적절한 투자 방법에 대해서도 책 후반부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마 투자자들에게는 이 책의 후반부가 좋은 포인트가 될 수 있겠는데, 나에겐 딱히 관심있는 주제가 아니라서. 

 

전반적으로 대중적인 책이다. 어려운 개념도 쉽게 설명하는 저자의 능력이 돋보인다. 관심 있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다만 작년 초에 출간되었다는 사실만 기억해두고. 

 

** 

 

책을 읽는 동안 흥미로웠던 구절을 옮겨놓는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주로 블로그로 와서 찾아보게 되다 보니, 어느 새 블로그는 내가 읽은 책들에 대한 자료 창고 비슷해졌다. 

 

두 저자(미네소타대학의 준 카본 교수와 조지워시턴대학의 나오미 칸 교수)는 결혼제도가 아이를 기르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믿음이 많은 미국인에게 이제는 매력이 없거나, 아니면 성취하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결혼한 부부의 절반이 이혼하는 상황이고, 미국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40%가 미혼모(Single mother)를 부모로 두고 있다.(중략)

미국 소득 상위 30%(=대졸자)의 사람들에게 결혼은 여전히 과거와 비슷한 모습이다. 이혼율이 낮고 이들은 너무 바빠서 결혼시장에 다시 돌아갈 여유가 없다. 특히 부유한 부모는 결혼 제도의 장점과 혜택을 아이에게 물려줄 수 있다. 두 저자는 미국 사회에서 소득 상위계층만이 자녀들에게 투자할 시간과 돈이 있다고 말한다. (<<결혼시장Marriage Markets>>에 대한 리뷰 기사 인용문) (98쪽)

 

집값이 급등했는데, 왜 저물가 타령인가?

(...) 이 의문에 간단하게 답하자면, 일단 소비자물가나 생산자물가 등을 산정할 때는 '주택가격'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가를 산정할 때 집값이 아니라 전세나 월세 같은 집세가 포함된다. 따라서 물가 흐름을 볼 때는 전세나 월세 가격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 (17쪽) 

 

 

 

 

 

디플레 전쟁 - 8점
홍춘욱 지음/스마트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