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글쓰기에 대한 두 권의 책

지하련 2006. 3. 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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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츠 폰 베르더/바바라 슐테-슈타이니케 (지음), 김동희(옮김), <<즐거운 글쓰기>>, 들녘, 2004년 초판 3쇄
스티븐 킹(지음), 김진준(옮김), <<유혹하는 글쓰기>>, 김영사, 2004년 10쇄(2002년 초판)




책을 읽을 땐 반드시 옆에 노트를 두고 필요한 문장을 적는다.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꼭 서평을 쓴다. 특히 서평을 쓰지 않을 땐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읽지 않았다는 기분이 들어 매우 불편하다. 가끔 서평을 쓸 수 없는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피터 버크의 <<이미지의 문화사>>(심산)같은 책은 매우 좋은 책이며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지만, 서평을 쓴다는 것이 꽤 부담스러운 책이다. 교과서에 가까운 책이기 때문에. 실은 쟈크 르 고프의 <<서양 중세 문명>>(문학과 지성사)같은 책도 이와 비슷하다. 이런 유의 책에 대한 서평은 쓰지 않거나 쓴다 하더라도 ‘무척 좋은 책이다’정도로 끝난다.

<<즐거운 글쓰기>>는 몇 년 전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구입한 책이다. 구입하고 난 뒤, 후회하긴 했지만. 글쓰기가 가지는 치료 효과에 대한 설명이 있는 듯해 구했지만, 그 설명은 별로 없고 글쓰기 아이디어만 가득한 책이라 몇 페이지 읽고 서가 구석에 꽂아두었다. 그 때 원고 청탁 때문에 들어간 책값만 십 만원이 넘는다. 무리해서 원서도 샀다면 확실히 적자였을 것이다. 나의 경우엔 대체로 원고 청탁 같은 걸 받으면 고료보다 책값이 더 들어간다. 잡지 같은 곳에 실리는 글은 본질적인 내용을 시의 적절한 그릇에 담아내야한다. 하지만 시의 적절하다는 단어는 쉬울지 모르겠지만, 이를 글로 표현하는 건 다소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때 알게 된 것이지만 잡지에 글을 실을 땐, 편집자에게 반드시 이야기해할 것이다. 글의 성격, 주제에 대해서 꼬치꼬치 물어볼 것. 그래야만 잡지의 방향과 맞는 글을 쓸 수 없거나 쓰기 싫은 종류의 글임을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글을 편집하지 말 것. 이는 글의 품질에 대해서 저자가 책임진다는 걸 의미한다.

하지만 그 편집자의 행동이 국내에서는 매우 당연한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편집할 수밖에 없는 국내 사정도 알게 되었다. 정말 비극적인 일이다. 정말 제대로 된 필자가 드물다는 건.

<<즐거운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한 심신의 안정, 사고의 유연성, 정신 치료 등을 위한 교과서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일반 독자가 사서 읽기에는 적당치 않으며 학교나 병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책이다. 아, 나도 제대로 된 글이란 걸 쓰고 싶어 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은 적당치 않다. 그런 경우엔 <<유혹하는 글쓰기>>가 좋겠다.

가끔 글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비결은 없다. 운동선수가 매일 운동하듯이 글쓰기도 그렇게 매일 하면 된다. 스티븐 킹도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고 주문한다. ‘스티븐 킹의 창작론’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대단하거나 놀라운 비결이 숨어있지 않았다는 것이 나에겐 놀랍게 느껴졌다. 대중 소설을 쓰는 스티븐 킹마저 글의 기본을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장차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유혹하는 글쓰기>>는 추천할 만하지만, 너무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만 명심하자. 그리고 실은 스티븐 킹의 창작론보다는 그의 고향, 가족,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더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