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처음 읽는 터키사, 전국역사교사모임

지하련 2022. 7. 3. 18:49

 

 

처음 읽는 터키사

전국역사교사모임(지음), 휴머니스트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 군사력이므로, 러시아가 우위를 점하고 있기에, 한 때 같은 나라였으므로 정치적, 외교적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짧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최근 세계사나 지리, 혹은 지정학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유튜브로 볼 수 있는 삼프로TV가 많은 영향을 끼쳤다. 투자방송이나 투자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인문학적 배경이 강조하며 이와 관련된 방송들을 편성해 해주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추천한다!)

 

삼십 대 후반 약 이 주 정도 이스탄불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이 도시는 중세 분위기를 가지고 있으면서 한 쪽으로는 상당히 낙후되어 있으면서, 한 쪽에서는 끝없는 부유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지금은 터키의 수도는 아니지만, 이 거대 도시는 언제나 제국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다시 제국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 제국의 느낌을 풍기는 나라로는 러시아나 중국, 미국을 떠올릴 수 있지만, 한 때 제국이었던 나라들도 무시하면 안 된다. 가령 인도나 터키, 이란 같은 나라 말이다.

 

최근 우연히 터키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 빠르게 알고 싶어 이 책을 골라 읽었다. 쉽게,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책이다. 

 

발칸반도와 아나톨리아 반도

 

터키의 세계는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지중해다. 한 때 그리스-로마 문명 안에서 고대, 중세를 지나 오스만 제국으로 이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땅에서 살던 그리스-로마인들의 흔적들은 유적으로만 남아있으며, 현재 터키인들은 동양에서 건너온 튀르크 족의 후예들이거나 이들의 혼혈들이다. 튀르크 족이라고 해서 낯선 민족이 아니라 우리 역사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돌궐 족이 바로 튀르크 족이다. 이들이 아나톨리아반도까지 나아가 정착한 후손들이 현대 터키인들이다. 그래서 문화적으로는 유럽을 지향하면서도 혈통적으로는 동양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까. 여담이긴 하지만  동양적인 스타일의 미인이 더 인정받는다고.. 

 

에게해 연안 터키 땅에는 기원 전 8~7세기 무렵 그리스 본토에서 살고 있던 수많은 그리스인들이 건너와 폴리스를 건설하였다. 기원전 1세기에 로마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이 때 대표적인 도시가 에페스(에페수스)이며 전성기 때는 25만명이 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페스는 이미 그리스 시대부터 그 지역 대표적인 도시였으며, 로마 때까지 이어졌다.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 - 에페소스

    

6세기 후반 몽골 초원을 이우르는 제국으로 발전했다가 동튀르크와 서튀르크로 분열되었으며, 서튀르크족의 일부인 셀주크 튀르크가 점차 서쪽으로 이동해서 셀주크 제국을 세웠으며, 이들이 계속 서쪽으로 영토를 넓혀 터키땅에 룸 셀주크를 세웠다. 그 뒤를 이어 오스만이 세운 오스만 제국이 오늘날 터키땅을 중심으로 발달했고 이를 직접 계승한 나라가 바로 터키다. 1299년 오스만공국이 오스만제국이 되었으며, 1923년 터키공화국이 된다. 

 

오스만 제국의 영토 변천사

 

지금의 이스탄불, 즉 콘스탄티노플에 자리를 잡은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은 로마의 후손들이면서 동방 문화의 영향권에 있었다. 지역적으로 보자면 현재의 터키 땅에 자리잡았으나, 현재 터키를 살아가는 이들과의 직접적인 연결점이 없기 때문에 짧게 다루어지는 듯 싶다. 더구나 종교도 다르고 혈통도 연관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터키 역사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오스만제국으로부터 시작된다. 비잔틴 제국이 무너진 그 자리에 오스만 제국이 시작되었다. 위 지도에서 오스만 제국이 얼마나 큰 영토를 지배했는가를 알 수 있다.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는 술레이만 대제(술레이만 1세, 1494-1566) 시대였다. 그 때 만들어진 '술레이만 법전'은 토지, 군사, 지방 치안, 형법 등 세부적인 사항들까지 규정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광활한 영토의 제국을 통치할 수 있었다. "이슬람교도든 튀르크인이든 상관없다. 법은 종교와 인종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에서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하느리라.", "나는 신의 수호자로서 신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릴 법을 만들 것이다. 이제부터 이슬람의 관습법(샤리아) 외에 제국의 각 지역에서 적용되던 법들을 모아 술탄의 법을 만들라" 이렇게 탄생한 '술레이만 법전'은 오스만 제국의 기틀이 되었다. 

 

이슬람 국가들 중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으며, 보기 드물게 600년 동안 이어진 왕국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19세기 이후 빠르게 발전하는 근대 과학 문명을 따라가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유럽의 환자'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세계 제 1차 대전에 동맹국으로 참전하는 바람에 현대 터키 공화국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때 1차 세계 전쟁 영웅이었던 무스타파 케말이 없었다면 현재 터키 공화국은 없을 지도 모른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1881~1938)은 터키를 세속주의 국가로 만들었으며 정교분리를 택했다. 유럽의 문물을 받아들였으며 국제 정세를 잘 알고 있는 유능한 지도자였다. 그가 없었다면 현재의 터키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은 그를 싫어하지만 말이다. (무스타파 케말에 대해서는 따로 찾아서 읽어보길 권한다.)

 

무스타파 케말

 

40년 동안 네 차례(!960, 1971, 1980, 1997)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정당 정치는 계속되었다. 군부에 대한 터키인의 지지와 신뢰도는 높은 편이다. 또한 군부의 정치 개입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지 않다. 정치가 혼란할 때면 군부가 개입했다가 이후 질서가 회복되면 정궈을 민간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오스만 제국시대부터 이어져온 엘리트적 전통, 장군 출신인 아타튀르크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 군부의 청렴성과 정직성, 애국심 등이 신뢰의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의 전성기를 주도하였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에서 터키를 무시할 수 없다. 이와 비슷하게 이란이 큰 소리를 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그렇게 듣게 되는 페르시아 제국이 현대 이란이기 때문이다. 아래는 책을 읽으면서 상식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것같아 메모해놓은 것이다. 

 

본래 하렘은 아랍어로 '하람'에서 생겨난 단어로 '종교적으로 금지된', '신성한 장소' 등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하렘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거나 통제되는 곳으로, 이슬람 사회에서는 가까운 친척 외에 일반 남자들은 출입할 수 없는 장소였다. 궁전 후궁의 처소 뿐만 아니라 무슬림 여성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모두 하렘이라고 불렀다. 

 

또한 사람들은 '카웨(kahve)'에 모여 커피를 즐기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커피는 15세기 중엽 오스만 제국에 전래되었다. 커피는 본래 포도주나 술을 의미하는 '카와(kahwa)'라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말로, 술처럼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드라큘라의 모델이 되었던 영주는 역사 속의 실제 인물로 본명은 블라드 체페슈(1431 ~ 1476)다. 그는 루마니아 옛 왕국 중 하나인 왈라키아 공국의 왕위 계승자였다. 드라큘은 '용' 또는 '악마'라는 뜻을 가진 루마니아어인데, 체페슈의 아버지 블라드 2세가 당시 유럽에서 용문장을 그린 깃발을 달고 다니던 기사단의 한 사람으로 활약했기에 불여진 별명이다.  

 

책을 읽은지 몇 주가 되어 정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막상 적고 보니, 여기도 반도 지역인데,  반도를 중심으로 제국이 된 나라가 여럿 있는데, 한국만 예외적인 듯 싶다. 이탈리아도 그렇고 터키도 그렇고, 그러면 앞으로 제국으로 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건가, 아니면 지중해적 특성일까. 한국은 바다 건너 중국이나 일본 뿐이니 말이다. 다른 나라의 역사나 문화에 관심을 가지면 자연스레 그 나라의 현재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터키사 책이긴 하지만, 대부분 오스만 제국이야기가 대부분이긴 하다. 아마 터키 사람들은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이다. 위대한 이슬람 제국이었던. 위대한 술탄이 지배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