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리추얼의 힘, 캐스퍼 터 카일

지하련 2022. 7. 9. 12:06

 

 

리추얼의 힘 The Power of Ritual 
캐스퍼 터 카일(지음), 박선령(옮김), 마인드빌딩 



우연히 집어 든 책에 금세 빨려 들었다. 리추얼Ritual, 음, '제의적인 것의 힘'이라고 옮겨야 할까. 하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폭넓은 의미로 해석되기에 그냥 리추얼의 힘으로 옮겼을 것이다. '제의'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제사를 떠올리는데, 교회 예배나 성당의 미사, 절의 법회 등도 일종의 제사다. 더 나아가 이 책에서는 신성한 것, 영적인 것을 떠올리고 이와 관련된, 정기적이고 반복되는 모든 활동을 리추얼로 해석한다. 따라서 혼자 영적인 것을 떠올리며 명상에 빠지는 것도 리추얼이 된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이러한 리추얼과 관련된 활동들이 사라지거나 공동체에서 많이 희석되어 여러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그 중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사람들이 공동체의 부재를 느낀다는 것이다. (…) 불과 십 여 년전 많은 이들이 열광하며 맞이한 기술이 연결과 공유를 위한 유토피아적이고 디지털적인 신세계가 아니라 이제는 불안과 외로움, 끝없는 비교와 감시로 정의되는 다른 종류의 신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단편화 시대가 불안의 시대를 연 것이다. - 대처 캘트너(UC버클리 심리학과 교수) (11쪽)

 

이 책은 이러한 리추얼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이를 회복시키기 위한 활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당신의 연결 리추얼을 4단계에 걸쳐 심화시키기 위한 초대장이다.
- 자신과의 연결
- 주변 사람들과의 연결
- 자연과의 연결
- 초월자와의 연결  (34쪽)  

 

책은 순서대로 자신, 주변 사람들, 자연, 초월자로 이어지며 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주장한다.

 

모든 관계의 첫 단계는 본인의 자아와 진정으로 연결되는 경험이다. (39쪽)

 

하지만 우리는 언제 혼자 자기자신과 진정으로 마주하는가?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에서 셰리 터클은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로 인해, “첫째, 남들이 항상 내 말을 들어주고, 둘째, 원하는 곳에 관심을 둘 수 있으며, 셋째, 결코 혼자가 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소원은 우리가 진정한 자아와 연결되는 중요한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가로 막는다.”(83쪽)고 지적한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2016년 미국의학협회저널 <JAMA>에 보고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성인 여섯 명 중 한 명은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항정신병약을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39쪽) 최근 읽은 해외 저널의 기사에선 한국의 높은 자살율은 마음(정신)이 아픈 것에 대해 너무 간과하고 적절한 시기에 이를 치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었다. 하긴 주변을 둘러봐도 정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찾기 쉽지도 않을 뿐더러, 이 곳에 가면 뭔가 스스로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같아 주저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영적 독서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수행을 의미하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마치 성경과 같은 영적인 책으로 여기고 읽어나가길 권한다. 저자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그렇게 읽었고 같이 읽은 많은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독서는 더 큰 자각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다. 또 용기와 헌신을 향한 길이기도 하다.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도록 도와주고, 더 나은 미래를 살아갈 방법도 찾아준다. (59쪽) 

 

‘신성하다sacred’라는 말은 라틴어 ‘축성하다sacrare’에서 유래되었다. 축성祝聖이란 무언가를 신성한 존재로 만들거나 신성하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성함이란 행동에 깃들어 있고, 인간에게는 ‘신성한’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50쪽)

 

이를 영적 독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2세기에 귀고 2세가 영적 독서법을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얇은 책(사실 팸플릿에 가까운)을 썼다. 그는 이 책을 <<스칼라 클라우스트랄륨Scala Claustralium>>이라고 불렀는데, 라틴어로 ‘수도승의 사다리The Ladder of Monks’라는 뜻이다. (61쪽)

 

성경을 읽는 것으로 시작해 명상, 기도, 사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 신앙심을 굳건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와 유사하게 다른 책들도 그렇게 읽어보길 권한다. 네덜란드의 신학자 헨리 나우헨은 렘브란트의 그림 한 장을 통해 영적인 독서를 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기도 했는데, 이미 번역되어 있었다.(헨리 나우헨, <<탕자의 귀환>>) 그리고 제니 오델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How to do Nothing>>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도 국내에 번역되었다.

 

고독을 위한 성스러운 시간 (89쪽)

 

나는 언제 나 혼자만의 고독을 위한 성스러운 시간을 가졌던가. 이 책은 상당히 종교적이다. 그렇다고 종교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현대의 회의론자들이 극단적인 주장, 종교라든가 신앙심이라든가 하는 것을 반대하며 이를 버려야한다고 주장하는, 가령 리처드 도킨스 같은 학자들을 떠올렸다. 여기에 반해 테리 이글턴은 <<신을 옹호하다>>라는 책을 쓰기도 했지만. 

 

내가 이 책을 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너무 찌들어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도 아니다. 이 책은 신성한 것들을 자기 안으로 불러들이면서 나와 자연, 세계, 저 너머 신성한 어떤 존재와 같이 공명하면서 스스로를 돌이켜 보기를 권한다. 일종의 마음챙김같은 명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 이상이다. 

 

“아름다움은 저너머에서부터 나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저 너머의 감각과 공명하기 때문에 나의 관심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그런 의미에서 아름다움은 이상적인 방문이다. 그리고 내 안의 ‘다른 곳’에 즉시 정착한다.” - 존 오도노휴 (170쪽)

 

“인간의 사고 형태나 언어는 우리 자신과 식물, 동물을 고립된 사물, 억제된 자아로 여기도록 부추기지만, 사실 피부 표피는 생태학적으로 섬세한 상호침투가 이루어지는 껍질이 아니라 연못 표면이나 숲의 토양과 비슷하다.” - 폴 셰퍼드(179쪽)

 

앤서니 블룸의 <<기도의 시작>>은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종이책으로는 없고 다행히 pdf 파일로 구할 수 있어서 한 번 읽어볼까 하고 있다. 기도를 하지만, 스스로도 기도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같아서. 

 

“진정한 기도란 주변 사물이 이전에는 결코 인식해본 적 없는 깊이로 갑자기 자신을 드러내거나 갑자기 자기 내면의 깊이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  앤서니 블룸 <<기도의 시작 Beginning to Pray>>

 

그리고 책은 존 오도노휴의 의견을 이야기하며 종교적인 것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들 동의하다시피, 이 때 이야기하는 종교란, 나를 드러내며 너(타자)를 돌보며 서로 공명하는 어떤 우주를 뜻하는 것이지, 한 쪽으로 치우진 극단주의는 아닐 것이다. 

 

“종교가 사멸하자 많은 사람들이 공허와 의심의 틈새에 갇혀 있다.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을 인식하거나 축하하거나 타결시키는 리추얼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축복의 능력을 되찾고 다시 일깨워야 한다. 경건하고 관심어린 태도로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접근한다면, 그 교차 지점은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 많은 걸 가져다줄 것이다. 축복은 이곳에서 교차지점이 제공하는 모든 선물을 언급하고 일깨워준다. “ 
- 존 오도노휴, <<우리 사이의 공간을 축복하다 To Bliss the Space Between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