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이론

거울에 비친 유럽, 조셉 폰타나

지하련 2006. 5. 17.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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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유럽
조셉 폰타나(지음), 김원중(옮김), 새물결, 1999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일까, 아니면 안 좋은 일일까? 나는 위계질서가 분명했던 이집트 시대와 위계질서가 불분명했던 헬레니즘 시대를 비교하면서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었고 그것들이 충돌했을 때의 비극적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미술 양식 상의 비교이긴 하지만, 적어도 다양한 시각과 가치체계가 있다는 건 타자를 인정하고 배려해주는 문화로 가기 보다는 자신의 시각과 가치체계를 타자에게 주입하고 강요할 가능성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인간이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세계'에 놓여있었던 때가 얼마나 될까? 하지만 현대와 같은 다원주의적 세계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타자, 다른 사상, 다른 종교, 다른 계급을 인정하고 배려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며 그러한 태도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퍼져 일반화된 삶의 양식으로 기능하기란 지나간 역사에 비추어볼 때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후 그 생각은 더 굳어진다.  
이 책은 유럽이 자기들의 시각과 가치체계를 우월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일들을 벌여왔는가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매우 좋은 책이다.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유럽중심주의를 놓친 적이 없다. 성직자든, 왕이든, 귀족이든, 부르주아이든, 그들은 그들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장치를 개발하여 이를 적용해왔다. 그리고 조셉 폰타나는 예리한 시각으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장치들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어조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안다고 해서 과거가 지워질까? 혹은 미래가 밝아질까? 그저 알고 있을 뿐, 과거를 바꿀 수 없고 미래를 바꿀 수도 없다. 어쩌면 타자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자신의 세계를 고수하고자 하는 어떤 방향, 위계질서가 확고한 세계에서 느끼는 편안함 등은 인간 고유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즉 전제 군주정이나 느슨한 파시즘 체제, 종교가 중심이 되는 어떤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별 문제 없이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인간에 대한 신뢰가 생기기 보다는 신뢰가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더 공부를 하게 되는 건 아닐까.

이 책을 읽고 반-유럽주의자가 되어선 매우 곤란하다. 왜냐면 이 책은 유럽에 대한 이야기이라기 보다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는 어떤 일들에 대한 유용한 해설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