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의 우주/예술

파울 클레의 삶과 예술

지하련 2001. 4. 25. 17:01

파울 클레의 삶과 예술, 크리스티안 겔하르(지음), 책세상




'건축 공식과 같은 회화와 시적인 회화를 조화시키는 것’(28쪽)

1+1=2가 되듯이 우리 삶도 어떤 규칙 - 모든 사람이 알고 공유하고 있는 변하지 않는 - 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그러면 지금보다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현대 예술가들은 그런 걸 염원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전주의 시대는 늘 찰나같이 짧고 우리는 늘 낭만주의 시대를 살아간다

낭만주의 시대의 고전주의는 어딘가 비극적인 면모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걸까. 나에게 파울 클레는 발터 벤야민이 끝까지 놓지 않았던 그림의 화가로 늘 기억된다. 이 불행했던 학자의 삶처럼 파울 클레의 작품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파울 클레의 작품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불행한 어떤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불행했던 유태인 학자가 마음 속으로 꿈꾸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 기하학적이면서도 따뜻한 어떤 아름다운 세계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회화 작품은 ‘하나의 집과 마찬가지로 한 조각 한 조각 세워지게 된다’. 화가는 건축가처럼 ‘무게를 지탱할 수 있도록 작품을 구성해야’ 하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평형을 이루어질 때까지 형태적 요소들을 서로 주의 깊게 맞추어야한다.(44쪽)

파울 클레는 이러한 시각 속에서 외부 세계를 우아하고 아름다운 색채와 도형으로 재구성해 낸다. 건축과 바로크의 다성 음악은 파울 클레의 세계에 직접적이고 깊은 영향을 미쳤고 그의 작품들은 마치 음표들이 흘러가는 듯한 건축학적인 율동들로 가득 차있다. (* 이러한 20세기 초반의 건축학적이면서 음악적인 율동은 칸딘스키, 앙리 마티스, 들로네 등과 같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21세기 초반의 우리가 아직까지 파울 클레의 작품을 보면서 좋아하는 것은 우리의 삶도 발터 벤야민이 그랬던 것처럼, 늘 불안하고 쫓기는 듯하며 삶의 아름답고 행복한 면보다는 슬프고 불행한 면을 먼저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일까.

이 책은 파울 클레의 작품 세계를 간단하게 알기에는 손색이 없는 책이지만, 너무 간단한 것이 흠으로 지적될 수 있다. 도판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하고 초심자가 읽기에는 설명도 인색한 편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책을 사서 읽을 사람이 몇 명쯤 될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