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아담이 눈뜰 때

지하련 2004. 2. 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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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 고향 집 근처 어느 거리의 오후


창을 열면 들판이 보이고 멀지 않은 곳에 나무와 풀들로 가득한 숲이 있으리라는 상상을 해본다. 만약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그러면 내 상상력은 좀더 풍성해지고 내 우울함도 가라앉으리라. 내 영혼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지고 내 언어는 진실하면서 감동적으로 변하리라.

시간이 흘러 서울로 올라온 지 벌써 12년이 되었다. 그 사이 내 나이는 서른을 넘겼고 부모님은 그만큼 늙으셨다. 고향집 내 작은 방은 가끔 집에 들르는 여동생 내외가 자다가 가는 방, 내가 명절 때 잠시 지내는 방으로 변해버렸다. 그 사이 부모님과 할머니와의 사이는 더욱 나빠져 아흔을 향해 가시는 할머니는 늙은이들이 사는 집의 외딴 섬같이 변해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꼭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살아남은 한 명의 베로니카가 죽은 베로니카의 집에 찾아가는, 그 때 그녀의 다른 아버지는 혼자 집 서재에 앉아 있었다.

근대적(Modern) 삶 속에서 늙는다는 건 혼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혼자 죽는다. 그건 진리를 파악하는 자로, 이 세계를 인식하는 자로 ‘생각하는 나’를 두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쓸쓸함을 노발리스는 ‘고향상실’이라고 말했다. 신을 믿었던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에 선 단독자’라고 했지만, 여기서도 인간은 혼자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혼자 있는다는 것이 너무 싫은 인간이 더 이상 진리의 파악도, 이 세계의 인식도 싫어, 싫어라고 외치는 흐름이다. 그래서 모더니티, 즉 근대성은 외로움과 쓸쓸함을 가슴에 앉고 난 이 세계를 알아낼 수 있을거야라고 시작하는 것이라면 포스트모더니티, 탈근대성은 외로움과 쓸쓸함에 지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던 길을 멈추고 자리에 앉아 내가 왜 이렇게 외로워하고 슬퍼하는가가 물어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는 엉엉 울기 시작한다.

며칠째 슬픔이 너무 밀려들어 견딜 수 없었다. 꿈 속에서 어떤 이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그는 이미 없고 그의 이미지들은 내가 혼자 있다는 공포 속에서, 그 공포에서 도망치면서 축조해낸 것들이었다.
장정일은 80년대 후반 문단에 나오면서 자신은 도망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몇 권의 시집을 내고 몇 권의 소설을 내고 몇 개의 희곡을 내었다. 나에게 아직도 그는 소년처럼 보인다. 중졸이었나. 소년원 생활에다 문제아로 자라난 그였다. 그의 소설 중에 ‘아담이 눈뜰때’가 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그러나 내 소망은 너무나 소박하여 내가 국립 서울대학교에 입학기를 원하는 어머니의 소망이나, 커서 삼성 라이온스에 입단하기를 꿈꾸는 어린 사촌동생의 소망보다 차라리 더, 어렵게만 느껴졌다.”

지금 이 소설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대학 2학년 때, 내 나이 스물이었을 때 이 소설을 너무 좋아했었다. 한 때 타자기를 가지고 있었고(지금은 노트북을 가지고 있다) 뭉크화집이 있으며 오래된 오디오를 가지고 있다. 음반은 한 육 백장 정도 있고 책은 몇 천 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내가 가진 물건들이 늘어날수록 내 영혼은 초라해지고 빈곤해지고 슬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내일보다 어제를 떠올리는 시간이 많아지고 겁이 많아지고 뜨거움을 잃어버리고 한발한발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정말일까.

오후 늦게 외출해 영풍문고 강남점에서 그라모폰 2월호를 샀다. 지금 부록으로 들어있는 시디를 듣고 있는데, 무척 좋다. 이제 수입도 없는 주제에 하는 짓은 여간 고급스러운 게 아니다. 사려고 적어놓은 클래식 음반, 재즈 음반 리스트는 늘어가고 사려고 하는 책도 여럿 된다. 온라인 서점의 wish list만으로도 보통 회사원 한 달 월급이 날아갈 정도다. 그리고 서브시스템으로 사용 중인 오래된 리시버 앰프와 작은 스피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고 싶고 우드 케이스의 이쁜 턴테이블도 다른 것으로, 보다 좋은 것으로 바꾸고 싶다.

대책 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자기 전에 ‘아담이 눈뜰때’를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슈퍼에서 사온 맥주 한 병 홀짝거리면서 말이다. 가령 이런 문장들은 지금 봐도 찡하다.

‘우리는 부산행 보통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가슴에는 창녀의 마음을 안고.’ 

‘내 성감대는 모의고사에 있어. 시험때만 되면 바짝 달아 오르곤 해.’

‘그리고, 끝이었다. 심육일간의 올림픽 일수를 자신의 죽음을 위한 카운트 다운으로 삼았던지, 그녀는 올림픽이 끝난 다음날 저녁, 그녀의 아버지가 지었을지도 모르는 빌딩의, 자신이 애용하던 디스코 클럽의 십층 유리창을 깨고 보도로 떨어져 내렸다.

지방의 석간 식문을 통해 현재의 죽음을 접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그녀의 팬티였다.’

‘- 나는 행복한 거지가 되고 싶은 염세주의자다.
- 우리는 성적 욕구까지 억제하며 떳떳하게 도망을 다녔는데 그게 아니었어
- 경찰놈들, 그렇게 비상을 쳐놓고도 우리를 못 잡으면 간첩은 어떻게 잡느냐.
- 돈 있으면 판, 검사도 살 수 있는 더러운 세상이다. 이 새끼들아.
- 열두 시까지 차를 대기시켜라. 공기 좋은 산이나 강에 가 죽고 싶다.
- 무전유죄, 유전무죄
- 나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인이다.

생으로 중계되는 티브이로 툭툭 던져지는 지강헌의 말을 들으면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그는 경찰에게 비지스의 <할리데이>가 들어 있는 테이프를 갖다 달래서, 그 노래를 들었다. 그리고 나서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인은 자신의 목에 유리를 그었고, 몇 시간 뒤엔 특공대의 총을 맞고 죽었다.’

‘대구에 내려온 나는, 등록금의 매우 적은 일부를 덜어 중고의 사벌식 타자기를 한 대 샀다. 나는 늘 타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왔고, 스무 살이 되어서야 그것을 갖게 되었다. 나는 이것으로 무엇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편지나, 일기, 아니면 진짜 창작을 말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제일 먼저, 이렇게 시작되는 내 열아홉 살의 초상을 그릴 것이다.

내 나이 열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라디오에 연결해서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이렇게 끝나는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내 슬픈 영혼도 조금의 위안을 얻을 수 있겠지. 아마 얻을 수 있을 거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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