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련의 우주/Jazz Life

우울증

지하련 2002. 12. 18. 11:36
 검은 음표들이 아래로 떨어지면 거리는 순백의 빛깔로 빛나고 내 초라한 청춘의 섹스는 그녀의 신음소리로 옷을 갈아입는다. 투명한 유리창은 몰락의 나팔을 불고 있는 천사 가브리엘 같았고 말없이 내리는 저 흰 눈은 그대 슬픈 눈동자를 닮아있었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내 정액도, 그대 신음소리도, 우리 살갗 위를 흐르고 있는 땀방울 하나하나 대기 속으로 녹아 사라질 때, 보드라운 입술로 내 혀를 감싸며 내 별 두 개 가슴에 달고 있는 그대, 내 온 몸을 받아준 그대, 젖은 목소리로 그대 사랑을 노래했지. 로코코를 닮은 그대 사랑을.

              *                      *  

  언제 적었는지도 모를만큼 가물가물한 소설 한 모퉁이 구절이다. 적다 말고 직장생활을 시작했고 그 때부터 멈춘 이 소설은 꽤나 나이를 먹었다.

  며칠 전, 잔뜩 쌓인 종이들을 뒤지다 이 소설 뭉텅이를 발견했고 이 구절을 읽으면서 슬퍼했다. 며칠째 우울증이 가시지 않는다.

  피곤하다. 내 생이. 내 영혼이. 내 언어가. 그리고 날 둘러싼 이 세계가 너무 소란스럽다. 천천히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구토를 해야겠다. 내 영혼의 찌꺼기를 게워내기 위해.